주님과 동행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마음
우리는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는 사람을 일컬어 흔히 “믿음이 좋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믿음이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기에 정확히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교회 출석 횟수나 봉사량으로 믿음을 재단할 수도 없고, 성경 지식의 많고 적으므로 판단할 수도 없다. 결국 믿음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리고 죽음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는가에 드러나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자는 죽음 이후 주님이 계신 천국에서 영생한다고 확신한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천국으로의 이사’로 받아들이며, 감사와 기쁨으로 그 길을 맞이한다. 이런 자세로 생을 마감하는 자를 우리는 진정으로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 부른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려가는 마라토너에 비유하면 어떨까.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한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죽음을 준비하며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이다.
평생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단순한 종교 생활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철저히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이처럼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 맡기는 신앙을 우리는 ‘별세의 신앙’이라 한다. 믿음의 사람은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사는 경험을 하며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신앙의 삶이며,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맛보아야 할 현실이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진 자라 할 수 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뜻이다. 주님이 지금도 나와 함께하신다고 믿는 사람은 그 믿음에 걸맞은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입으로는 “주님이 함께하신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주님과 동떨어진 행동을 한다. 진정한 신앙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난다.
‘임마누엘과 별세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려 애쓴다. 복음을 전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한다. 그 마음속에는 항상 거룩한 부담감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억지가 아니라 사랑에서 비롯된 열정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고귀한 마음이다.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한 장로님은 은퇴하신 아버지 장로님을 두고 “나는 우리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라고 고백했다. 자식에게 신앙의 본이 되어 존경받는 아버지,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아닐까. 믿음은 세대 간에 전해지고, 삶으로 증명되는 유산이다. 세상이 혼란할수록 ‘별세의 신앙과 임마누엘의 신앙’을 품은 사람들의 삶이 이 땅의 등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용창 장로
<사회복지칼럼리스트, 제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