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군 가운데 자랑스런 무적해병대는 으뜸 방패다. 6.25 전쟁 중에 승리만 이룬 역사가 혁혁하다. 해병대 창립은 1949년 4월 15일이다. 해군 장교 26명 하사관 54명 병 300명 모두 380명으로 조직했다. 초대 사령관은 신현준 대령이다. 참모장에게 김성은 중령에게 맡겼다. 해병대 창설 1년만에 6.25 전쟁이 일어났다. 동족상잔의 이 참혹한 37개월의 전쟁 중에 해병대는 용감하게 7대전투의 승리를 거두었다.
그 첫째가 진동리지구 전투의 승리이다. 진주를 점령한 인민군이 마산습격을 위해 진동리작전을 펼칠 때 1950년 8월 7일부터 13일까지 김성은부대 해병대가 전투승리를 거두어 전략적 요충지 마산 진해를 잘 지켰다.
둘째는 통영상륙기습작전이다. 진동리작전 승리로 일계급 승리를 이룬 김성은 부대가 전략상 요충지가 되는 통영을 되찾기 위해 대대급의 해병김성은부대로 통영상륙기습작전에 8월 17일 승리했다. 통영 원문고개를 철저히 방어하고 통영을 지킴으로써 마산 진해 부산까지 방어가 되었다. 낙동강 전선방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는 인천상륙작전의 승리다. 맥아더 장군은 미국 한국 해병대 국군 일부 모두 7만 5천 명 병력으로 극히 어려운 인천상륙작전으로 승리를 이루고 전세를 국군승리로 역전시켰다. 그리고 서울을 탈환하고 이어 국군이 38선을 넘어 평양 함흥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1950년 중공군이 개입되어 전선은 38선을 두고 오락가락했다.
네 번째 해병대 승리는 도솔산고지탈환작전이다. 1951년 6월 19일 중동부전선 요충지로 산악이 험악한 도솔산고지를 밤낮 일주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해병이 승리했다. 같은 중동부 전선에 있는 김일성고지(924고지) 모택동고지(1026고지)도 1951년 8월 31일부터 9월 5일까지 용감하게 전투한 한국해병이 고지 탈환에 승리했다.
다섯 번째로 함경북도 명천 앞바다에 있는 양도에서 1952년 2월 20일 야밤에 습격해온 인민군 대대급 병력을 중대급 소수 병력으로 한국 해병대가 승리를 거두었다. 일곱 번째 해병대 승리는 장단 사천강전투에서 중공군 1개사단을 물리친 승리다.
1952년 11월 5일 휴전 논의가 진행될 때 중공군 1개사단이 인해전술로 공격해 왔으나 김성은 사령관이 지휘하는 우리 해병대의 용감무쌍한 전투로 중공군 사단병력을 거의 섬멸했다. 해병대는 휴전 무렵 대거 도전해 오는 중공군을 철저히 물리친 것이다. 6.25 전쟁중에 어린이들은 “무찌르자 오랑캐 몇백만이냐!”로 노래를 불러 반공정신을 보였다. 장단전투에 중대장으로 직접 참여한 바 있는 임경섭 중위(장로․예비역 소장)의 용감한 전투체험담은 극동방송국 부사장일 때 우리 화성교회 오후 예배 때 간증설교로 발표할 때 실감 있고 진지하게 들은 일이 있다.
해병대는 1965년 10월 월남 자유를 지키기 위해 청룡부대로 참여해 1967년 2월 15일 짜빈둥전투에서 베트공 제40연대 60연대 2천400명에게 제2해병여단 11중대 249명이 공격을 받았다. 우리 해병대는 243명을 사살하고 다수 무기를 노획하며 과감히 물리쳤다. 해병 1개중대가 1개 연대병력을 물리친 전투승리는 제2차대전 이후 처음이요 짜빈둥 신화로 해병전투의 빛난 승리역사다. 6.25 전쟁중이나 월남파병 전투중에서 승리를 이룬 우리 해병은 대한민국 으뜸 방패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육해공군 해병대 4군체제로 해병대를 더욱 강화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해병대가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 방패는 튼튼하다. 올해 1322기 780명 해병대 신병이 믿음직하게 배출 되었다. 우리 “나가자 해병대”노래 높이 부르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