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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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선교 단체에서 소개받아 영국에서 온 선교사와 더불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그 선교사는 내게 첫 월급으로 4만 원을 주었다. 내게는 매우 소중하고 큰 돈이었다. 그 선교사의 모친도 시각장애인이었기에 한국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몇 개월 간 형제같이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고 모든 것을 의논했다.

그러던 중에 영국 여자하고 결혼한 한 청년이 총무로 왔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지 불과 일년 남짓함에도 불구하고 목사를 능가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시련인 줄 알고 그때마다 믿음으로 참고 인내했다.

그러나 내적으로 닥치는 분노와 억울함은 참을 수 있으나 인격적으로 모독당하고 배신당하는 것을 참아 넘기기는 힘들었다.

 그때 내가 데리고 있던 전수학교를 나온 사동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동의 월급이 나보다 만 원이 더 많았다. 그래서 나이도 내가 더 많고 학벌도 월등한데 사동이 나보다 월급이 많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사동은 눈을 뜨고 너는 눈을 감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만일 내게 예수님이 계시지 않고, 믿음이 없었다면 나는 그의 한 눈을 뽑아 버릴 정도로 화가 났었다.

얼마나 분노가 치솟아 올랐는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내가 있는 직장에 몇몇 시각장애인 형제들이 투서를 냈다. 그 이유는 “김선태 목사는 점자도 모르고 일반학교를 다녀서 시각장애인의 세계를 모르니까 대신 우리의 형편을 잘 아는 인물을 채용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여자는 내가 하는 일을 몰래 가져다가 하는 기막힌 일도 있었다.

총무는 내가 있는 직장에 들어오려고 영국인 선교사와 한국인 총무에게 갖가지 모략 중상을 퍼부었다.

그 모든 불의한 일들을 목격하면서 발견한 진리가 있다. 인간답게 마음씨를 바로 써야 사람이지,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은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배울 것도 없을 뿐더러 인격적으로 모독만 당하고 분노와 억울함 때문에 내 생명이 짧아질 것 같아서 그곳을 그만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나의 마음은 고요한 호수처럼 평안하게 되었다.

성경에 “원수 갚는 것은 나에게 있으니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는 말씀은 진리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억울함과 분노가 있을 때 참고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처리해 주신다.

도둑이야!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복잡한 버스 안에서 지갑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할 때도 있고, 집에 도둑이 들어와서 귀중한 것을 몽땅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까지 두 번이나 반갑지 않은 밤손님을 맞이한 적이 있다.

대학 시절, 친구가 자취방을 얻어 놓고 나와 같이 지내자고 했다.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고 기숙사에는 더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기에 그 형제와 함께 있기로 하고 기숙사에 있던 짐을 옮겼다. 그러니까 4년 간의 기숙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친구의 자취방은 봉천동 산꼭대기 난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흙벽돌로 지어진 단칸방에 비가 오면 빗물이 책꽂이 위로, 이불 위로 흘러내리는 엉성한 곳이었다.

나를 포함해 세 친구가 함께 있게 되었다. 한 친구는 물을 길어오고, 또 한 친구는 밥을 짓고, 나는 감자를 깎는 일과 식사 후에 주로 설거지를 담당했다.

낙엽이 지고 으스스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다. 한밤중에 함께 자던 친구가 갑자기 “도둑이야!”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밤손님은 놀란 나머지 옆에 놓여 있던 운동기구인 무거운 아령을 집어던지고 도망쳤다.

그런데 아령이 바로 나의 귀밑으로 떨어졌다. 정통으로 맞으면 그 자리에서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 후에 우리 숙소를 찾았던 밤손님은 잡히고 말았다. 알고 보니 그 동네에 사는 사람 중 교회에 종종 나오던 사람이었기에 충격은 컸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나는 가정을 이루고 북아현동 한 구석의 쓰러져 가는 적산 가옥에서 살았다. 그 집은 어느 선교부에 있을 때 선교사가 무상으로 빌려 준 집이었다. 워낙 낡고 오래된 가옥이었기에 벼룩과 빈대가 들끓고 쥐가 판을 쳤다. 또 앞뒷집에서 때는 연탄 냄새와 화장실 냄새가 코를 찔렀고, 대문은 있으나마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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