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구역예배’는 전체가 모여서 진행하는 예배 시간과는 별도로 지리적·생활권 단위 혹은 집 단위에서 소그룹이 정기적으로 모여 예배·성경 공부·교제·기도를 나누는 방식입니다. 영어권에서는 주로 cell group, home group, 또는 small group이라 부릅니다. 이 방식은 전체를 집중 관리하는 대신, 여러 작은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의미합니다.
1958년에 시작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급속한 출석자 증가가 있었으며, 1964년경에는 이미 수천 명의 성도가 모였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대형 예배당 중심 구조만으로는 폭발적인 교세를 감당하기 어려워졌고, 이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64년경을 기점으로 소그룹을 중심으로 자율적으로 모이는 ‘구역예배’라는 구조를 도입했습니다. 이 구조는 수천, 수만 개의 구역 모임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후 오순절은 물론 전통적인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에서도 이 ‘구역예배’ 전략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마다 수백, 수천 명의 성도가 모여들자 전통적인 예배 구조만으로는 돌봄, 양육, 전도가 어려워졌고, 개개인에게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친밀한 관계와 책임이 필요했습니다. “구역이 살면 교회가 산다”라는 말이 생길 만큼 급성장하는 한국 교회에 평신도 리더십을 개발해 목회자 1인에게 과중한 부하가 걸리는 것을 예방하기에 효과적이었습니다. 또한 구역예배는 교회가 급성장하는 가운데도 영적 양육과 돌봄, 성경 공부, 전도 동력 등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역예배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한국 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 문화의 변화와 구역예배 자체의 한계로 인해 이제는 교회마다 구역장은 있으나 구역예배는 거의 실종된 상태입니다. 구역예배가 무너진 구체적인 이유를 살펴보자면
첫째, 많은 교회에서 구역 모임을 ‘소규모 예배’로 운영하다 보니, ‘찬송–기도–설교–주기도문’ 같은 전형적 예배 순서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경우 각자 삶의 이야기와 감정을 나누는 시간보다 ‘예배 순서 진행’이 우선되기 때문에 공동체성·친밀감 형성이 어렵습니다.
둘째, 구역예배는 ‘구역장이 말씀을 가르치고 나머지는 듣는 구조’로 고착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수직적 구조를 강화하며, 참여자들은 자연스럽게 수동적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상호 나눔과 상호 배움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셋째, 예배 중심으로 진행되면 정해진 순서에 따라 빨리 마무리해야 하는 분위기가 생깁니다. 그 결과 구역원들의 개인적인 고민, 영적 상태, 가정 문제, 기도 제목을 깊이 나누기 어렵고 인격적 돌봄 기능이 이뤄지지 않게 됩니다.
넷째, 구역예배의 질은 구역장 역량에 크게 좌우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구역장은 전문적 훈련이 충분하지 않거나, 본업·가정·개인 신앙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돌봄 사역까지 떠맡아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구역장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정체, 해체, 분열을 겪기도 합니다.
다섯째, 구역원을 구성할 때 대부분 ‘지리적 구분’ 혹은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편성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이·성향·신앙 수준이 너무 다른 사람들이 모였기에 실제 공동체성을 형성하기가 어렵습니다. 같은 집에서 사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같은 구역에 편성되기도 해 깊은 마음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여섯째, MZ세대(30대)와 X세대(40대) 등 요즘의 젊은 세대는 수평적·자발적·개방적 소통 구조를 선호하는데, 구역예배는 전통적·위계적·권위적 형식에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일부 젊은 성도들은 구역 참여를 부담스러워하거나 동기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고질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 구역예배는 한국 교회의 성장기에 유용했지만, 오늘의 시대와 문화, 신앙 욕구를 반영하기에는 여러 구조적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 소그룹은 구역예배라고 하는 ‘예배 형식’이 아니라 나눔과 소통의 장으로, 일방적 가르침에서 상호 나눔으로, 형식적 관계 중심에서 함께 신앙적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 지향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최영걸 목사
<서울노회 부노회장, 홍익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