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잊을 수 없는 이야기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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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어머니들의 헌신적 사랑

울 때 같이 울어 주고 아플 때 같이 아파 주고 배고플 때 배고픈 설움을 함께 나눠 주고 고독할 때 위로해 주는 친구가 가장 아름답고 귀하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우는 자를 더 울게 하고 희망이 사라진 사람을 더욱 절망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어머니 상들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1960~70년대 서울역 앞에 ‘양동’이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었다. 정부에서는 그곳에 모여 사는 부도덕한 사람들을 변두리로 내보냈다. 그래서 그들이 살던 두세 평짜리 방들이 비게 되었고 오갈 데 없는 시각장애인과 돈이 없어 기반을 잡지 못하는 형제 자매들이 모여 살게 되었다.

전철과 버스, 다방이나 식당 혹은 거리에서 구걸하거나 볼펜이나 껌을 팔면서 노래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수단이었다. 하루 벌어 방값으로 일세를 내고 남은 것으로 근근이 살아갔다. 그렇게 살다 보니 그들은 희망도 없고 하루하루 사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또한 그곳에는 술 마시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고 살아가는 딱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조그만 방 안에서 연탄 난로불을 피워 난로 위에서 밥도 지어 먹고 물도 끓이는 등 모든 생활이 이루어졌다.

그러던 중 처참한 일이 일어났다. 어느 젊은 시각장애인 부부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났다. 생후 일년 남짓하게 되었을 때 엄마가 실수로 난로 위에 끓는 물을 건드려서 물이 아기에게 쏟아져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나는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새 희망을 주고 위로를 줄까 싶어서 기도하던 중에 뜻 있는 분들께 부탁해 떡도 해다 주고 지팡이도 주고 했으나 그것이 참 위로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이미 구성되어 있던 실로암 어머니회에 양동 지역에 사는 시각장애인 형제 자매들을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어머니들은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 아니겠냐며 선뜻 응해 주셨다. 그 후 실로암 어머니들은 그곳에 찾아가 빨래도 해주고 쌀도 나눠 주셨다.

그리고 때마침 시각장애인을 위한 애능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교회가 세워진 후부터 양동 지역의 시각장애인 형제 자매들이 한 사람 한 사람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애능교회는 양동지역 형제 자매들로 교회의 주축을 이루게 되었다. 그들은 성가대도 하고 청년회도 참석하는 등 변화되기 시작했다. 실로암 어머니회는 거기에 보조를 맞추어 모든 힘을 기울였다.

희망이 없던 그들은 뜨거운 어머니의 사랑을 체험하고 인간 대접을 받았다고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얼마 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정부의 도움으로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재활센터로 옮겨졌다. 그곳에서도 그들은 가나안 교회를 설립해 교회 중진이 되었다. 양동 지역은 지금 힐튼 호텔과 대우 빌딩이 세워진 화려한 지역이 되었다.

실로암 어머니들의 기도와 정성과 사랑은 내일이 없는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장을 열어 주는 데 주역을 담당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는 실로암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다.

한가족처럼 대해 주신 믿음의 어머니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심을 확신할 수가 있다. 나는 많은 분들께 나의 전 삶을 드려 평생 갚아도 못 갚을 사랑을 받았다. 특히 믿음의 어머니들께 받은 사랑을 잊지 못한다. 그중 몇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일이다. 나는 긴 거지 생활을 끝내고 부산 송도에 자리잡은 ‘빛의 집’에 입학해 점자를 배우고 중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모든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빛의 집’은 일반 고아원 같은 곳인데 단지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수용되어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곳에서 나오는 식사는 형편없었다. 어떤 때는 안남미 밥에 시래깃국 한 가지였고, 꽁보리밥에 생 콩잎을 간장에 찍어 먹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썩은 옥수수 가루를 반죽해 찐 것 한 조각을 주식으로 삼을 때가 많았다. 그것마저 없어서 끼니를 못 이어가고 굶는 날도 많았다.

그 허술한 틈을 타서 바로 이웃집에 사는 어떤 사람은 썩은 건빵을 가져다 원생들에게 외상을 주며 차후에 돈을 갚으라고 했다. 원생들은 썩은 것도 모르고 사다가 누가 빼앗아 먹을까봐 담요를 뒤집어쓰고 먹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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