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선교] ‘전근대 한국행형사’ 근세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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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 남아있는 원형옥은 군옥(郡獄)이라 칭하고 군수의 관리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규모가 작은 것이었다. 이 원형옥은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공주읍 외의 논과 들의 한가운데 위치했고 아래와 같이 직경은 15칸 정도, 외벽의 두께는 3척 정도, 높이는 1장 정도로 율석(栗石)으로 쌓아올리고 상단은 기와지붕으로 한 이어진 담이었고, 하나의 출입문을 설치하고 그 문 앞에는 간수소를 두었다. 그리고 내부에 있는 옥사는 매우 거칠게 건축되었으나 근년에 개축된 것 같고, 예전의 구조에는 완전히 그 예를 볼 수 없는 투통(透通)하는 견잔식(堅棧式)으로 만들어졌다. 

방은 2실로 10평 정도의 면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원형옥은 1914년 1월 근대식 공주감옥이 건축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그 당시 공주 감옥의 분금장(分禁場)으로 사용되고 있었고, 재방자는 20~30명 정도 있었고 주간에만 활짝 열어두었다. 

그리고 그곳으로부터 약 10정 정도 떨어진 읍내에 있는 본감(本監)으로부터 파견된 1인의 간수가 담 밖에서 보초를 서서 계호하고 있었다.

감옥 설비는 수도의 전옥서, 금부옥, 포도청옥만은 불완전하지만 구금기관에 해당하는 형체를 구비하고 있었지만 그밖의 직수의 각 관아가 가지고 있는 구류간(감방)과 지방 수령이 관리하는 옥과 같은 곳은 거의 하나의 옥사로 해 특별한 건축양식에 의한 것은 아니고 단지 인간을 감금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곳간으로도 모자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융희(隆熙)의 새로운 정치의 실시 전까지 경성내 여러 곳에 잔존한 폐해(廢廨)된 2, 3곳에 대해 그 구내의 한 구석에 옛날의 구류간이었다고 불리는 곳의 퇴폐(頹廢)되어 있는 구 옥사의 유적을 시찰했다. 많은 곳이 채광, 통풍이 불충분한 음참(陰慘)한 낮고 작은 집으로 직감적으로 이것은 연탄보관실보다도 심하다고 생각되었던 적이 있었다. 다만 앞에 기술한 공주의 원형옥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다. 

김성기 목사 <세계로교회>

 한국교도소선교협의회 대표회장

 법무부 사)새희망교화센터 이사장

 대한민국새희망운동본부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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