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절 내게 사막에서 오아시스와 같이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이 있었다. 그분은 당시 한양교회 집사였으며, 지금은 미국 LA의 벧엘장로교회에 출석하시는 김월옥 권사님이시다. 한양교회는 지금 부산노회 소속 은성교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 권사님은 함경도에 남편을 두고 아들 하나, 딸 둘을 데리고 피난 나오셔서 송도 근방 산꼭대기 모자원에 사셨다. 자갈치 시장에 나가서 떡 장사를 해 하루하루 생활하셨던 권사님은 내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콩을 넣고 만든 밀개떡 한 접시를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통해 보내 주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김밥, 부침개, 찰떡도 보내 주셨다. 그런가 하면 내 몸이 허약해져서 뼈만 앙상하게 남았을 때 어디선가 어린 송아지를 사다가 고아서 친아들 딸도 안 주고 내게만 주었다. 현재 그분의 큰아들은 장로, 장녀는 전도사, 차녀는 벧엘장로교회 목사 사모가 되었다. 벧엘장로교회는 LA에서도 굴지의 교회로 선교에 앞장서는 교회이다.
잊지 못할 또 한 분이 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참으로 험난했다. 집도 없고 돈도 없고 부모도 일가 친척도 없어 그 쓸쓸함은 무엇으로도 다 표현할 길이 없다. 그중에서도 시력 장애를 가진 내가 몇천 명 눈뜬 학생들 틈에 끼여 공부하고 생존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었다.
그 당시 나의 소원은 학교 근방에 살면서 버스 안 타고 등교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던 중에 해방교회 윤영자 집사님(현재 전도사)께서 어느 날 “우리 집에 와서 애들하고 같이 있으면서 공부하라”고 하셨다.
그 댁은 숭실고등학교 옆 언덕 위에 있었다. 그분 남편은 불신자였으나 자녀들이 교회 가는 것은 절대 반대하지 않는 호인이었다. 아들 둘에 딸 넷 모두 여섯 자녀를 둔 집은 방 세 개가 있는 그다지 넓지 않은 집이었다. 물이 귀해 수도여고 앞에서 물을 지고 그 높은 언덕을 올라와야 했는데, 그나마 날이 가물면 물 한 동이 구하기가 금보다도 더 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한 가족처럼 대해 주며 중고등학교를 편히 다닐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그리고 내게 큰 도움을 주신 또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실로암의 가족들은 실로암 안과병원 앞면에 최창근 장로에게 매입한 65평 대지 위에 ‘빛의 집’을 세우게 해달라고 10년이 넘도록 매일 아침 예배 시간마다 기도해 왔다.
나도 ‘빛의 집’ 건립을 위해 이곳 저곳에 협력을 청원했고 실로암 안과병원에서 재직하고 있는 직원들도 헌금했으나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원 극장을 운영하시는 이기련 회장님께서 얼마의 헌금을 가지고 나를 찾아오셨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분은 상에 떨어진 밥알 하나라도 다시 주워서 드시는 알뜰하고 검소한 분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감동시킴으로 우리의 기도를 11년 만에 들어주신 것이다. 그것을 기초로 용기를 얻어 ‘빛의 집’ 건축을 시작했으나 공사비는 여전히 모자랐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실로암 어머니회 은방희 권사님을 비롯해 김귀자 권사님 등 여러분들이 기도와 마음을 합해 분에 넘치도록 기금을 모아 주셨다.
사실 1987년 고 윤필영 형제의 자손 윤충섭 권사님 가정에서 자그만 씨앗을 뿌려 놓았기에 빛의 집을 건립할 꿈을 가질 수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실로암을 찾아오는 여러 계층의 분들이 많다. 젊은 남녀 성도들은 나를 친형제나 가족처럼 대하며 교제와 사랑을 나누고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믿음의 어머니,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시고 헌금하셨다. 이분들의 숨은 봉사와 사랑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분들의 사랑을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나는 그분들에게 나의 몸과 정과 혼을 다 바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는 것으로 보답하고 싶다. 나의 생명이 있는 한 그분들의 사랑을 간직하며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약할 때 하나님은 강하시다
사람은 누구나 강한 부분이 있으면 약한 부분도 있다. 가령 눈이 건강하면 코가 나쁘거나 귀가 건강하면 목이 약하거나 위가 튼튼하면 신장이 약한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나의 몸도 80퍼센트 이상이 약하다. 여러 번 말한 것처럼 매맞고 추운 겨울에 땅바닥에서 자고 여름에는 비 맞은 옷을 그대로 입고 살아온 까닭에 온몸은 약함 투성이다. 나의 머리는 여러 곳이 상처로 얼룩져 있다.
김선태 목사
<실로암안과병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