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방 공무원이 머리를 싸매며 필자에게 이렇듯 하소연한 적이 있다. 벌써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당시의 충격은 여전히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복지 업무 담당이었던 그 직원의 말에 의하면, 지역에서 복지 관련 기관을 운영하던 한 목사가 매일같이 사무실을 찾아왔다고 한다. 출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퇴근할 때까지 간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직원은 행정이나 민원인 응대에 집중해야 할 업무 시간에, 목사가 찬송가를 부르거나 기도를 한다는 명목으로 통성 기도를 이어갔다고 토로했다. 이 목사가 이런 기행을 보인 이유는 재정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해당 시설에 재정 지원이 없던 것도 아니었고, 추가로 사업비를 배당할 수는 없는 상황임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그는 “줄 때까지 이 행동을 강행하겠다”는 억지를 부렸다는 것이 담당 직원의 설명이다.
이 직원이 마지막에 푸념처럼 내뱉은 말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천주교 운영 기관은 현지 방문 조사 시 살펴볼 필요도 없이 서류 정리부터 시설 운영까지 완벽에 가깝도록 투명하게 운영합니다.”
“반면 교회(개신교)는 입이 닳도록 설명해 주어도 매뉴얼대로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운영상 의혹이 드는 부분도 발견됩니다.”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교회는 불신의 시선으로부터 온전하게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의 중심에서 분란을 조장한다는 비난만 커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의 위신은 어쩌다 이토록 추락했는가?
우리나라 근대화 시기, 교회는 선진 교육·의료·기술 등으로 이 나라를 굳건하게 세우는 데 이바지했을 뿐만 아니라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순교의 피를 흘리며 앞장서 왔다. 전쟁으로 빚더미에 나앉은 민초들을 위로하고 일으켜 세웠으며, 나라의 위기마다 시대의 정신이 되어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때문에 신앙 유무를 떠나 ‘교회’와 ‘기독교인’은 믿음의 대상으로 동일시되어 왔다. 그러나 어느 틈엔가 “‘교회’와 ‘기독교인’은 믿고 거른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일부 교회에서조차 타 교회나 신앙인들에 대해 믿지 못하겠다는 발언과 행위가 언론을 통해 전해질 정도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난해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교회의 위상은 더욱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고 사회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치 중이라 속단하기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자타공인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 일컬어졌던 교회의 자리는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현실이 개탄스럽기만 하다.
사회는 이 갈등 해소에 교회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다. 정통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된 통일교와 신천지의 정치 개입 의혹이 알려지면서, 일부 국민들은 개신교 전체를 의심하는 눈초리를 보내기도 한다. 이는 그동안 교회가 ‘말씀’과 ‘행함’을 일치시키지 못해 발생한 결과이며, 그러한 국민적 인식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옛말에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이라 했다. 오이 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않고 자두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않아야 하듯이, 의심받을 만한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교회의 사명이 ‘예수 팔이 장사’로 오해받거나 비난받는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 ‘오직 예수님’을 되새기는 일이다. 예수님으로 행복한 교회와 성도, 예수님으로 한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사역의 장을 계획하는 2026년이 되기를 소망한다.
채영남 목사
<증경총회장, 본향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