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장로의 자리 (벧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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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라는 단어는 교회의 직제 용어로 익숙하지만, 본래는 공동체 안에서 나이가 많고 덕망과 지혜를 갖춘 어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부족사회뿐 아니라 국가와 종교 영역에서도 널리 사용되어 왔으며, 그리스의 에포로스나 로마의 원로원 역시 ‘연장자’라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교회가 장로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유도 같다. 공동체를 이끌 지혜와 덕목을 갖춘 사람에게 붙인 이름이며, 연장자가 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기에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구약에서도 장로라는 개념이 등장하지만, 신약의 초대교회에 이르러 장로는 교회 지도자를 가리키는 구체적인 직분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은 나이가 아니라 덕목이 장로의 기준이라는 사실이다.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 나타난 교회 지도자의 자격은 이를 잘 보여준다. 장로는 단지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 아니라, 성품과 인격에서 높은 기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만큼 장로의 직분은 초대교회에서도 매우 무겁고 영예로운 자리였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권면하며 자신을 “함께 장로 된 자”라고 소개한다. 사도 중의 리더였던 그가 이처럼 말한 이유는 사도적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교회의 지도자들과 영적 동지로 서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장로들이 베드로를 영적 지도자로 바라보았던 것과 달리 베드로는 자신을 장로들과 같은 사명의 동역자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는 사도의 직분을 낮추거나 장로의 직분을 상대적으로 높이기 위함이 아니다. 사도의 직분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부여받은 영적 권위로 결코 부인될 수 없다. 그럼에도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장로의 직분이 그만큼 무겁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깊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가 말하는 장로의 정체성은 분명하다. 장로는 고난의 증인이다. 고난을 견뎌낸 이들이기에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가 된다. 장로의 자리는 결코 쉽지 않다. 그리스도의 자리가 고난의 자리였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종이 서는 자리 또한 고난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사도의 자리와 장로의 자리는 정체성에 있어 다르지 않다.

장로는 양 무리를 치는 자다. 모든 장로가 설교자는 아닐 수 있으나, 모든 장로는 목양자여야 한다.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 역시 장로의 정체성을 분명히 지녀야 하며, 장로는 목회자와 함께 교회를 돌보는 동역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이해하는 장로는 주님의 몸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깊은 책임감을 갖게 된다. 장로는 교회를 통해 목회자를 배우고, 목회자는 교회를 통해 장로를 배운다. 성도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장로가 될 때, 목사와 장로 사이의 불필요한 경계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베드로는 성도를 살피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라고 권면한다. 장로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장로의 사명을 감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말씀 묵상과 기도 속에서 주어지는 성령의 감동이 그 삶을 이끈다.

또한 장로의 섬김은 더러운 이득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장로로 섬기는 유일한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하며, 다른 이득이 개입될 여지가 있다면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기꺼이’ 감당하라는 권면은 준비된 마음으로 능동적이고 헌신적으로 섬기라는 뜻이다. 장로는 리더의 리더다. 그러나 그 리더십은 결코 지배나 압제가 아니다. 영적 권위는 필요하지만, 권위주의는 오히려 영적 권위를 무너뜨린다. 이미 충분한 권위가 주어진 자리에서 스스로 권위를 세우려 할 때, 이는 주님의 자리를 넘보는 위험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분명히 말한다.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순종과 기도, 헌신과 희생의 모범이 장로의 리더십이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모방하기보다 삶 속에서 만나는 장로들의 모습을 따라간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목회자와 아름다운 동역을 이루며, 베드로처럼 “함께 장로 된 자”라 고백할 수 있는 관계가 교회의 건강함을 만든다. 주님이 굳이 상급을 말씀하지 않으셔도 교회의 건강을 통해 목회자와 함께 기뻐하는 장로들이 되기를 기대한다.

김진성 목사

<통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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