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고는 못 산다고 친구가 푸념이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인데 남편이 아내보다 약간 덜 건강해서 준 간병인 수준의 생활을 하는 친구다. 학교 친구가 아니라 나이가 약간 많아서 90을 바라보는데 건강하다. 친구의 푸념을 들어보자. 약속이 있어 점심을 먹으러 나가야 하는데 좀 거하게 먹을 것 같아 집에 남겨두고 갈 남편이 마음에 걸렸더란다. 정성껏 샤브샤브를 마련해서 상을 차리고 남편에게 이른 점심을 대접하는데 치아가 나쁜 남편이 더 안 좋아졌던지 어쨌든지 이걸 어떻게 먹느냐며 불고기, 불고기 하면서 손을 내저었다. 시간이 약간 있어서 불고기가 더 안 씹힐텐데 왜그러지? 하면서도 아무 말 않고 얼른 불고기를 얇게 다져서 급히 만들어 대령했다. 그랬더니 이걸 어떻게 먹느냐며 펄펄 끓는 불고기 있잖느냐며 손을 휘저으면서 외마디 소리로 펄펄 끓는 불고기만 외쳐 댄다.
아니 세상에 펄펄 끓는 불고기가 어디 있느냐며 내가 이래가지고는 못산다고 목소리를 높힌다. 진정하라며 뚝배기 불고기를 생각하신 것 같다며 대접할 수 있는 남편이 곁에 있음에 감사하라고 둘러앉은 친구들이 이구동성 위로했다. 그래 90세의 나이에 부부가 해로하는 것만도 행운인데 같이 건강하니 그보다 더 감사할 일이 있겠는가? 그 친구가 존경스럽다. 삼시 세끼를 한결같이 따뜻한 음식을 새로 만들어 남편을 대접하고 외출할 때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일일이 어떻게 먹으라고 강의하다시피 하고 나온다니 그 아니 정성인가? 어떤 때는 맛있는 것, 오늘은 어떤 것을 주문해다 먹으라고 신신당부하고 나온다니 열녀가 따로 없다.
누워 있는 것 보다 백번 나은 상황이지만 그런 일들을 불평 없이 웃으며 해낸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70대 초반에 하늘길을 서두른 남편은 오후 5시쯤만 되면 왜 아직도 안 들어오느냐고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용은 똑같았다. 저녁은 어떡하라고 아직도 밖에 있느냐는 힐책이었다. 밥통에 밥 있고 냉장고에 반찬 있는데 꺼내 먹지도 못하느냐, 내가 당신 밥해 주려고 태어난 여자인 줄 아느냐며 소리를 높이고 전화를 끊었던 지난날이 회한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일찍 가버릴 줄 알았으면 열 일 제치고 잘해줄걸,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부르시니 홀연히 올라가고 말더라. 기회 주셨을 때 잘하고 볼 일인데 그때는 몰랐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