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말하는 ‘위에 있는 권세’는 국가와 그 공식적 대표자들을 가리키며, 동시에 국가가 가진 공적 권력을 의미한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속에서는 여러 모델이 시도되어 왔다. 국가가 교회를 통제하는 국가만능론, 교회가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신정국가론, 국가의 호의를 받는 대신 교회가 편의를 제공하는 상호 의존적 관계, 그리고 교회와 국가가 각자의 고유한 책임을 인정하며 협력하는 동반자적 관계다. 이 가운데 사도 바울의 가르침에 가장 가까운 것은 마지막 모델이다.
교회와 국가는 서로 다른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국가 모두에 대해 책임을 지닌 존재다.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말씀에는 그 긴장이 함축되어 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 로마 제국은 교회에 우호적이지 않았고 때로는 적대적이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국가 권력이 하나님께로부터 허락되었다고 말하며, 질서 유지를 위해 순종과 협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권력에 대한 무비판적 복종을 뜻하지는 않는다. 역사 속에는 헤롯, 네로, 히틀러, 스탈린과 같은 폭력적 통치자들도 있었다. 이들 역시 권좌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을지 모르나, 그들이 행한 통치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빌라도에게 “위에서 주지 아니하였더라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고 하셨지만, 빌라도가 그 권위를 남용한 책임에서 면제된 것은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권력 남용에 대해 분명히 경고한다. 관원은 선을 장려하고 악을 억제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역할을 거꾸로 행할 때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며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복종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을 요구하기 전까지다.
국가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명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금할 때, 그리스도인의 의무는 굴복이 아니라 저항이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고백은 그 기준을 분명히 한다. 성경은 히브리 산파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다니엘, 그리고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국가 명령에 불복종했던 사례를 통해 신앙적 시민 불복종의 정당성을 보여준다.
법과 제도가 하나님의 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할 때, 침묵은 미덕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시민 불복종은 혼란을 조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높은 질서와 정의에 대한 순종의 표현이다. 하나님이 주신 국가 권위는 전체주의적 지배가 아니라, 공동선을 위한 제한된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
복음은 폭군과 무정부주의자 모두에게 비판적이다. 교회가 권력과 유착하면 필연적으로 부패한다. 교회는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사회의 양심이어야 하며, 교회 지도자는 국가 권력이 길을 잃을 때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비상계엄 1년이 지난 지금, 교회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권력 앞에서 너무 침묵하지는 않았는가, 혹은 너무 쉽게 기대지는 않았는가. 교회가 교회다울 때 국가는 건강해지고, 국가가 제자리를 지킬 때 교회 역시 자유롭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이것이 2026년을 맞는 교회가 다시 붙들어야 할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유효한 원칙이다.
김용관 장로
<본보 논설위원, 광주신안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