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이재명 대통령이 집무실을 용산에서 종로구 청와대로 옮김으로써 대한민국 정부의 중심이 3년만에 다시 전통양식의 푸른 기와집으로 돌아왔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대통령제 민주공화국으로 탄생해 한반도의 남쪽 절반을 영토로 삼아 존재한지 78년이 경과했는데 대통령이라는 국가권력의 정점만을 놓고 본다면 이 나라가 아직도 하나의 과도정부 상황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수도(首都)에 관해서는, 조선왕조 때부터 국가기능의 중심이 되어온 서울을 불문헌법상의 수도로 인정한 2007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은 안보상의 이유, 국가 균형발전의 필요 등 문제를 거론하면서 수도이전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의 집무실이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며 세종시라는 반쪽짜리 행정 보조 수도마저 생겨 전체적으로 미완의 구조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기억하겠지만 청와대 터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명명한 景武臺 자리이고 그 집은 일제 강점기 총독 관저였다. 이 대통령은 1960년 4.19혁명까지 12년 이곳을 공관 겸해 사용했고 혁명 후의 짧은 민주당 집권기간에 윤보선 대통령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 청와대(靑瓦臺)라는 새 이름을 붙였다. 18년에 걸친 박정희 독재시대를 통해 ‘청와대’는 곧 국가권력의 상징이면서 물리적 통치의 정점으로 기능해 오늘 이재명의 청와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초법적 권위를 향유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 꾸준히 자라온 국민의 자유·민주의식은 1979년 10.26 밤 궁정동의 총성과 더불어 이 체제를 걷어치우고 몇 년간의 반동기를 거쳐 87년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되돌아보면 ‘청와대’는 대한민국 현대사(現代史)의 ‘시행착오’를 기념하는 건물이다. 이 집을 사용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들은 죽은 자나 산 자나 다같이, 자신들이 어렵게 획득해 몇 년씩 누렸던 권력에 대해 여한을 품고 있을 것이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밖에 못했던가. 청와대 집무를 시작한 이재명 대통령은 우선 내부적인 소통을 개선하겠다고 참모와 비서진을 근거리에 두고자 자신의 정위치를 본관 아래 여민관(余民館)에 정했다 한다.
청와대가 시민에 개방되었던 3년2개월간 총 852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는 숫자를 보면 우리 국민은 이 나라의 굴곡진 대통령사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 자체에 대해서는 일정한 외경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금쪽 같은 젊음을 국토방위를 위해 총 들고 보내고 아무 소리 없이 세금을 국가에 바치고 때가 되면 투표장에 가서 의원들과 대통령을 뽑고 땀 흘려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나라의 발전을 이룬다.
대통령이라는 고귀한 직분 맡은 자가 당리당략에 매이지 않고 정의롭고 지혜롭게 책임을 다하면 우리 국민은 광화문, 경복궁 넘어 삼각산 아래 자리한 푸른 기와집을 향해 경의를 표하고 만사가 잘되기를 기원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려면 괜히 옮겨 다니면서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