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서대전공원》에는 중학생 정도의 남학생들이 모여서 서로 낄낄대며 담배를 뻐끔거리지만 세상이 하도 험하고 조심스러우니 제지하거나 충고해주는 어른들이 아무도 없다. 이들을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손주 같은 아이들에게 봉변을 당할 위험성이 높고 또 혹시 연세 드신 노인이 “나도 너 같은 손주가 있어!”운운했다가는 십중팔구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예요?”라는 반격을 당하기 십상이다.
최근에 이런 학생들을 점잖게 계도(啓導)하는 방안으로 한 가지 비법(秘法)을 개발(?)했다. 영어선생이 영어를 매개로 한 비법이라 말하고 싶다. 내가 강아지와 산보를 하는 저녁 시간에 이들은 학교수업이 끝나고 또래들이 공원에 모여 하루의 긴장을 푸는 시간이다. 대여섯 명이 모두 담배를 입에 물고 있다. 할아버지가 강아지와 함께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은 별로 경계심을 갖지 않는 눈치이다. 나이 많은 ‘멍멍이 할아버지’가 자신들에게 공격을 가하거나 위해(危害)를 끼칠 일은 없으리라 안심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들과의 거리 1m 정도까지 접근해서 몇 초 동안 침묵을 지키면서 담배를 물고 있는 학생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잠시 후, 목소리를 가다듬고 점잖고 정감 있는 목소리의 영어로 말을 건넨다. “You guys, what are you doing over here?(너희들 여기서 무얼 하는 거지?)” 그 학생들은 할아버지가 건네는 뜻밖의 영어에 다소 놀라면서 다소 수줍은 표정을 짓는다. 순간 학생들의 태도가 다소 온순하게 변한다. 아마도 멍멍이 할아버지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학교의 원어민 교사를 만난 듯 친근감을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그 중에 영어를 이해한 아이가 대답을 한다. “We are friends. We are talking.(우리들은 친구들입니다. 우리는 대화하고 있어요)” 그때 내가 두 번째 질문을 던진다. “What grade are you in? (너희들은 몇 학년이지?)” 이따금씩 이 질문은 아리송한 듯, 얼른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자기들끼리 “무슨 말이니?” 하고 수군거리다가 그 중에 한 학생이 답을 한다. “We are in the ‘THREE’ of Middle School.(우리 중3이예요)”라는 답이 나온다. 그때 더 가까이 다가가서, “Oh, in the ‘THIRD’? (아, 중3이라구?)” 라고 말하면서 아이가 말한 영어의 오류를 우회적으로 바로잡아 준다.
다음 순간 그들이 긴장감을 풀도록 우리말로 말을 건넨다. “중학생이 이런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그리 보기에 좋지 않아. 나도 중3때, 호기심으로 담배 피우는 흉내를 내본 기억이 있는데 흡연은 기억력에도 안 좋고 건강에도 안 좋아. 대학생이 되어서 피워도 늦지 않은데 뭐가 그리 급하니? 내가 이렇게 말해도 너희들이 담배를 계속해서 피우면 소용이 없는 노릇이지. 다만 한 가지, 중3때 공원에서 담배 피우는데 어떤 멍멍이 할아버지가 담배가 건강에는 물론이고 공부하는데도 나쁘다고 충고해 준 것을 기억해주면 고맙겠어!” 이 무렵, 그들 대부분은 모두 담뱃불을 끈 상태가 된다.
작별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요식행위(要式行爲)가 있다. “우리 될 수 있으면 담배를 피우지 않기로 하자”하고 그들 중에 한 학생을 선택해서 새끼손가락을 걸면서 다짐을 하고 엄지손가락으로 도장까지 찍고 손바닥으로 복사를 한다.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 메시지가 있다. “낯모르는 할아버지의 말을 경청해주고 약속을 해주어 고마워!” 마지막 순서로 영어로 작별인사를 건넨다. “It’s time to say good-bye!” 이 학생들은 그 몇 분 사이에 친근감이 생겨 합창하듯이 한 목소리로 내게 답례를 한다. “Bye-bye!”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