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건강한 수치심이요 둘째는 해로운 수치심이다.
첫 번째, 건강한 수치심은 인간임을 깨닫게 해주는 에너지다. 수치심을 느낄 때마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한계가 많은 사람이다. 나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연약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가를 깨닫게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라는 것을 깨달으며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간다. 또한 건강한 수치심은 공동체에 큰 유익을 준다. 서로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한계가 너무 많은 존재이기에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고 사랑하며 섬기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지혜를 준다.
두 번째, 해로운 수치심은 건강한 수치심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감정을 다 느끼고 가진다. 하지만 인간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기보다는 인간 이상이 되려고 노력해 많은 것을 성취하고 완벽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기만의 진리에 사로잡혀 자아 팽창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자아 팽창이 지나쳐서 자신 삶과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기도 한다. 또한 인간 이하가 되어 지나치게 자기 비판, 자기 정죄, 자기 고문, 자기 파괴자가 되어 자기연민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우울해하며 자신을 저주하기까지 한다. 해로운 수치심은 인간의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주범이다. 필자는 매일 생각해 본다. 수치심을 느낄 상황이 될 때마다 나는 건강한 수치심을 가진 사람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해로운 수치심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가?
저는 제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왜냐하면 목사로서 많은 수치심을 느낄 때가 있었다. 1997년 3월이었다. 제가 부목사로 섬기고 있던 포항 중앙교회에서 부목사 10명이 성경공부반을 개설해서 성도들의 신청을 받았다. 다른 목사에게는 100명, 80명, 50명, 30명 등 많은 사람이 신청했지만, 내게는 한 명도 신청하지 않았다. 매주 수요일마다 동료 목사들은 성경공부를 하러 갔다. 그 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부끄러운 시간이었다.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못나고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성도들은 나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니 수치심이 내면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이것이 성도들에게 비추어진 내 모습이라면 저의 미래는 없습니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준비하고 배워야 할까요?” 그리고 새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새롭게 찾은 것이 크리스천 치유 상담연구원(정태기)이었다. 첫 강의를 듣는 순간에 ‘이것은 내 것이다. 제대로 공부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공부하자는 것은 ‘박사 학위까지 받자. 제대로 공부하자’라는 마음이었다. 저의 인생을 바꾼 날이었다. 필자는 80년도에 영남신학교를 졸업했기에 그때는 학사가 없었다. 치유 상담 학문을 만난 이후에 학사 과정, 석사과정 그리고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다. 오늘 이렇게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하고 장로회 신문에 글을 쓰게 된 것도 1997년에 경험한 수치심이 결정적이었다. 비교원리 속에서 하염없이 초라해질 수 있고, 수치심으로 인해 패배감에 사로잡힐 수도 있었지만, 이 사건을 내면 치유하고 해로운 수치심을 건강한 수치심으로 바꾸게 되었다. 자신을 극복한 나는 내가 너무 좋다. 내가 너무 대견하고 기특하다.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내가 인간임을 깨닫고 한계가 있기에 더욱더 하나님께 가까이 가니 이 은혜가 감사할 뿐이다.
이상열 목사
<경주 벧엘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