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갈증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설교는 넘치고 콘텐츠는 풍성하지만, 무릎을 꿇는 기도는 점점 사라져 가는 현실 앞에 우리는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기도는 식어가고 있는가?
첫째, 우리는 너무 바빠졌다. 기도는 시간이 남을 때 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중심인데도 불구하고, 기도는 늘 뒤로 밀려난다.
마르다처럼 분주함 속에서 섬기지만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 앞에 머무는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눅 10:38–42).
둘째, 기도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약해졌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임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응답이 보이지 않으면 기도를 포기해 버린다. 그러나 성경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고 분명히 선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사람들은 기도보다 돈이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막상 일이 터지면 그때서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울고 짜고 하지만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다.
셋째, 기도가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었다. 기도회는 일정 속에 남아 있지만 눈물과 씨름과 기다림은 사라졌다. 결과를 내는 전략은 많아졌으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기도는 희미해졌다.
성경이 말하는 기도의 본질
성경 속 부흥은 언제나 기도에서 시작되었다. 초대교회는 핍박 속에서도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행 1:14). 오순절의 성령 강림은 기도의 다락방에서 임했다(행 2장). 느헤미야의 개혁은 금식과 회개의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느 1장). 기도는 상황을 바꾸기 전에 사람을 바꾸고, 사람을 바꾸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접속하게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꺾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 앞에 무릎 꿇는 자리다.
다시 불일듯 일어나는 기도의 회복을 위해
기도의 회복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다음의 세 가지 길에서 시작된다.
1) 개인의 기도 회복 : 하루 첫시간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짧아도 좋다. 그러나 진실해야 한다. 골방에서 드려지는 기도가 교회의 영적 체온을 결정한다(마 6:6).
2) 교회의 기도 중심 회복 : 교회의 중심은 당회실이나 공동 회의가 아니라 전교인이 기도하는 기도실이어야 한다. 결정 이전에 기도가 있고, 계획 이전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3) 회개와 갈망의 기도 회복 : 편안한 기도는 많아졌으나, 마음을 찢는 기도는 드물다. 요엘 선지자의 외침처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로 돌아오라”(욜 2:12)는 부르짖음이 다시 필요하다. 지금, 다시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한다
역사는 증언한다. 교회가 약해질 때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남은 자를 통해 새 불을 붙이셨다. 오늘 이 시대가 어둡게 느껴질수록, 그만큼 기도의 불씨는 더 강력한 부흥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말로만 하는 기도가 아니라 무릎으로 사는 신앙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기도가 회복될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나고, 가정은 새로워지며, 이 땅에는 하나님의 뜻이 다시 흐르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 곳곳에 전쟁과 무서운 재해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그 위험지대속에 있지만 그래도 이정도 잘살고 잘 지내는 것이 기도의 힘이다. 그러나 그 기도의 포인트가 사라진다면 우리나라도 위험에서 벗어날수 없다.
한국교회는 다시 부흥의 불, 기도의 불을 붙여야 한다. 나부터 시작해 우리 모든 목회자들이, 성도들이 기도가 회복되게 하자. 그것만이 우리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다음세대를 지키는 길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자.
김준영 목사
<총회 동성애대책위원회 위원장, 대중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