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최초의 기독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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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파된 것은 언제쯤일까 하는 순전한 호기심으로 구글의 생성형 AI인 ‘제미나이’와 대화를 시작했다. 단 몇 시간의 대화만으로 여러 날, 여러 권의 학술서적을 찾는 고생을 하지 않고서도 충분한 자료를 얻을 수 있어서 놀라웠다. 그런데 정말로 더 놀란 것은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된 과정이 너무나 독특하고 특별하다는 점이었다. 

가장 이른 시기로는 통일신라 시대에 이미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서 당시 기독교의 한 유파인 경교가 유입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경주 불국사 경내에 돌십자가로 볼 수 있는 유물 등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이후 1592년 임진왜란 때 스페인 신부가 일본군을 따라 들어왔지만, 복음을 전하는 전도 활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당시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중에는 천주교 신자가 된 사람들이 다수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기독교와의 본격적인 만남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603년 실학자 이수광이 북경에서 가져온 『천주실의』를 조선의 유학자들이 접하고 연구함으로써 자생적으로 기독교 전파가 시작된 것이다. 천주실의는 북경에서 선교하던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의 저술로서, 기독교가 중국의 전통문화인 유교를 존중하고 보완한다는 보유론(補儒論)의 관점에서 한문으로 천주교 교리를 설명한 책이다. 마테오 리치는 하나님을 천주(天主)로 번역하고 유교의 옛 경전에 나오는 상제와 같은 분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조선의 유학자들은 중국을 통해 서양의 발달한 과학과 신문물을 접하고 배우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기존의 성리학이 공리공론으로 치우쳐 당리당략에 골몰하고 있는 현실을 개혁하려는 의지로 충만했다. 이들이 조선 후기에 나타난 실학파 유학자들이다. 이들에게 천주교와의 만남은 실로 놀라운 신천지가 열리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학문적 전통은 뿌리가 깊다. 통일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은 중국의 유교, 불교, 도교를 아우르는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통이 있음을 전하고 풍류도라 불렀다. 주자학이 조선에 들어와 이퇴계와 같은 걸출한 학자를 배출한 것도 이런 바탕 위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중국의 유학자들은 하늘(天)을 단지 비인격적인 이치나 법칙으로만 보았지만, 이퇴계의 이기론에도 나타난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성에는 예부터 인격적인 존재로서의 하늘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하늘의 뜻이다 라는 말을 우리는 일상에서 늘 접한다. 서양의 God이나 동양의 신(神)은 보통명사인 데 반해, 우리나라에만 유독 “하나님”이라는 고유명사가 존재하는 것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당대 최고의 지식인인 유학자들이 천주교를 단지 새로운 외래종교가 아니라 평생 공부한 유교의 완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최초의 신학자라고 불리는 이벽은 혼자서 천주실의 등을 깊이 연구한 끝에 스스로 최초의 천주교인이 되었고, 인척인 이승훈에게 북경으로 가서 선교사에게 세례받을 것을 강하게 권유해 실제로 이승훈은 자발적으로 세례를 받은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이벽과 이승훈이 중심이 되어 유학자 권철신과 정약용 형제들이 경기도 광주 천진암 등지에서 함께 공부하는 강학(講學)모임을 열어 공부하고 예배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앙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기독교국가가 된 것이 이해가 된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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