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으로 살아있다] 병에 감사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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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기증자가 생겼다는 급보를 받고 이식수술을 받기로 결단하던 날, 낮부터 검기울던 날씨는 회색 세상을 지어냈다. 마음 깊은 곳의 심정이 투영된 색깔이었다. 어둑발이 내리는 시간, 하늘은 냉기 머금은 겨울비를 뿌리고 있다. 깊어 가는 겨울, 비 내리는 저녁. 너댓 시간 전 왔던 길을 되짚어 간다. 발씨 익은 길인데도 오늘은 초행길만 같다.

‘장기이식, 성공, 실패, 생명, 죽음, 어머니, 아내, 영준, 현준….’ 태초의 혼돈만큼 뒤죽박죽된 머리에 잔상으로 떠도는 단어들. 지난 40년의 추억이 폭죽처럼 풀어헤쳐지면서 건강했던 시절의 장면들이 별똥처럼 쏟아진다. 어둠이 내리는 세상은 내 마음처럼 온통 검은 빛이다.

어린아이들을 꼭 안아주지 못하고 길을 나선 것이 못내 후회스럽다. 마지막 길일지도 모르는데…. 자꾸 뒤를 돌아다보았다. 눈에 길이 밟히고 마을이 밟히고 뒷산이 밟힌다. 오늘이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은 되지 않을까…. 차창에 어른거리는 아이들의 슬픈 눈에 빗방울이 부딪혀 눈물처럼 흘렀다. 나는 그동안 내 고통, 내 고뇌, 내 영적 혼돈에 휩싸여 아이들이 겪고 있는 고뇌와 두려움은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사랑보다 두려움을, 따뜻한 아버지의 품보다 외로움과 고독을 먼저 배웠을 것이다. 나는 내 걱정만 했다. 그들 영혼의  아픔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래, 얘들아, 아빠가 살아 돌아오면 이제 너희들의 아픔과 고통을 먼저 생각해 줄게. 미안!’ 

병상에 갇힌 후에야 사람들은 달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인생을 회고한다. 무엇을 잡으려 이토록 앞만 보고 달려왔던가? 그래서 많은 것을 얻었는가? 설령 얻은들 무엇하리, 이제 죽게 되었는데. 수십 년은 당연히 살 것이라 생각하면 오늘 하루를 왜 살아야 하는지,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묻지 않게 된다. 오늘을 묻지 않으니 사는 내내 삶의 의미를 질문하지 않는다. 오직 병상에 갇혀야 존재의 의미를 묻는 우리는 어리석기 짝이 없다. 세상에서의 달음질에 분주하다 건강이 무너지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쿵! 쓰러지고야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렸다. 진즉 종말론적 인생관을 가지고 살았더라면 넉넉히 사랑하고 나누고 베풀었을 텐데 불치병이 들어서야 후회한다. 평소 내가 듣지 못하던 것을 하나님은 병을 통해 듣게 하신다. 그러니 병을 감사하자.

김은진 목사

•홀여성선교회 회장

•마곡성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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