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로서 수많은 성도의 등을 보아왔지만, 감당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서도 무릎으로 하나님을 붙잡던 어느 집사님의 모습은 제 가슴에 영원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도, 그분의 뒷모습은 유독 제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집사님 가정은 남편, 아들과 함께 믿음의 길을 걷던 아름다운 ‘삼겹줄’이었습니다. 주일 예배의 자리와 평범한 일상의 순간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던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고 없는 이별이 찾아왔습니다. 남편 집사님이 갑작스레 소천하시더니, 그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하나뿐인 아들마저 병으로 어머니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을 연이어 잃은 그 깊은 절망과 고독을 누가 감히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상실의 무게는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깊이였고, 그 시간을 견뎌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믿음의 길을 떠났다 해도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선택이 자연스럽게 여겨질 만큼, 현실은 가혹했습니다.
하지만 집사님은 원망 대신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놀라운 선택을 하셨습니다. 장례를 마친 후 초췌하지만 맑은 눈빛으로 찾아와 남편이 남긴 유산 전액과 자신의 은․금 패물까지 모두 정리해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 모습에는 결연함보다도, 이미 깊이 정리된 마음의 평안이 배어 있었습니다.
“목사님, 두 사람 모두 천국에 갔으니 저는 주님 한 분이면 족합니다. 이 물질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이길 바랍니다”라는 고백과 함께 말입니다.
그 고백은 결심의 선언이기보다 오랜 묵상 끝에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믿음의 언어처럼 들렸습니다.
모든 것을 드린 후, 집사님은 스스로에게 가혹하리만큼 검소한 삶을 선택하셨습니다. 노후를 위한 안락함 대신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비용만을 남긴 채, 옥합을 깨뜨린 마리아처럼 삶의 전부를 비워내셨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지나치게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초라한 독거의 삶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의 안전장치를 모두 거두어낸 그 텅 빈 자리는 궁핍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겠다는 가장 강력한 신앙의 고백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비워냄은 상실이 아니라 의지의 방향을 분명히 하는 일이었습니다.
세상은 집사님의 빈손을 안타까워할지 모르나, 저는 보았습니다. 그 손이 결코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빈손이 사실은 세상의 썩어질 것을 버리고 천국의 소망을 가득 움켜쥔 ‘가장 부요한 손’임을 말입니다.
오늘도 묵묵히 예배 자리를 지키시는 집사님의 뒷모습에서 고난을 헌신으로 승화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봅니다. 말없이 드려지는 그 삶의 예배가 제게는 어떤 설교보다 깊게 다가옵니다.
이토록 귀한 하나님의 사람과 목양의 길을 함께 걷게 하신 주님께 눈물 젖은 감사를 드립니다.
김태호 목사
<운암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