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어느 기자의 이야기입니다.
오래 전 겨울이었습니다. 나는 지금의 고양시(高陽市) 쪽으로 취재하러 갔다가 열차를 타고 신문사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내 옆자리에는 연세가 지긋한 할머니께서 창밖을 바라보면서 앉아계셨습니다. 나는 할머니께 눈인사를 하고 그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한참 있다가 “어디까지 가시느냐”며 여쭸더니 할머니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나는 할머니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무엇을 간구하시기에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시느냐?”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조용히 차창 밖을 가리키며 나직한 목소리로 “하얀 눈으로 덮인 산야가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설경(雪景)을 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기자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내놓고 글을 쓴다고 하면서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은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할머니는 왼쪽 눈에 안대(眼帶)를 하고 계셨습니다. 까닭을 물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실명(失明)한 아들에게 한쪽 눈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눈을 나누어주어 아들이 아름다운 세상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정녕 하나님의 크나큰 축복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남 보기엔 조금 흉할지 모르겠지만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면서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할머니는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여러 가지 생필품을 떼다가 시골 동네를 찾아다니며 파는 장사를 하셨답니다. 성장한 아들과 딸이 셋이나 있지만 도회지로 나가 모두들 저 살기에 바쁜데 어디 어미까지 챙길 겨를이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두막이지만 내 집을 지키며 이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하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다가오는 명절에는 손자손녀들에게 학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좀 넉넉히 주려면 얼른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놓아야 할 텐데 경기가 전과 같지 않아 걱정이라고도 했습니다.
할머니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찬송가를 흥얼거렸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기자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머니도 늘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자신은 못 드시고 못 입으셔도 오로지 자식이 먼저였습니다. 이 할머니도 아들에게 육신의 일부를 주어 불편한 몸이지만 자식들에게 전혀 의지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손자손녀들이 찾아오면 학비를 보태 주려고 행상에 나선 할머니! 그런 가운데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가시는 할머니의 밝은 모습은 큰 감동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아일랜드 전설에 ‘가시나무새’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새는 둥지를 나와 평생을 편히 쉬지도 못하고 새끼들에게 먹이를 날라주기 위해 날아다닙니다. 그러다가 일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고 날카로운 가시나무 가시에 가슴을 찌르고 죽습니다.
언젠가 안이숙(安利淑, 1908~ 1997) 사모가 옥한흠(玉漢欽, 1938~2010)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사랑의 교회》에 오셔서 집회하시면서 찬송가 254장(내 주의 보혈은)의 가사를 부분적으로 개사(改詞)해서 불렀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내 주의 보혈은 정하고 정하다/ 내 죄를 정케 하신 주 날 오라 하신다/ 내가 주께로 지금 왔으니 예수님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위에 소개한 “가시나무 할머니”의 일화는 그 본질적인 전형(典型)이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