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 (시편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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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풀’ ׁ(1877, 데셰)는 ‘어리고 연한 풀, 새로 돋은 풀’을 뜻하며, 아카디아어 디슈(dishu: 봄의 풀, 새로 난 목초)와 동의어이다. ‘어리고 연한 풀’을 뜻하는 데셰는 비온 후에 돋아나서 저습지나 들판을 덮는 것이다. 

‘누이시며’ (7257, 라바츠)는 ‘내뻗다, 드러눕다, 놓다, 두다’를 의미한다. 이 동사는 ‘마구간, 아마도 눕는 곳’을 의미한다. ‘잠자다’라는 의미를 지니기보다는 ‘쉬다, 휴식하다, 노력을 그치고 쉬다’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영적인 양식의 핵심 주제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양식이신 구속자 예수가 우리 대신 죽어 그의 대속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살려내신 구원의 복음이며 피의 복음에 대한 생명을 주시는 대속의 복음인 것이다.

‘쉴 만한’ ְָּ(4496, 메누하)는 ‘안식처, 안식(휴식)’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보내주신 구원자 예수님의 대속의 피 값으로 성취하신 구원의 복음(생명 양식)을 먹이시는 하나님이 택하신 자녀들을 위해 배설하신 구원의 식탁은 일시적인 휴(안)식처 이기보다도 영구적인 장소(신 12:9, 왕상 8:56, 시 132:14), 즉 영원한 구원론적 안식처, 즉 하늘(시 95:11, 히3-4장)을 묘사한다.

‘인도하시는 ַָ(5095, 나할)은 ‘물 있는 곳으로 인도하여 쉬게 하다, 쉴 곳으로 데리고 가다, 인도하다, 원기를 회복시키다, 먹고 마시다’를 의미한다. 종말에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이러한 곳으로 다정하게 인도하심이 입증될 것이다(사 40:11, 49:10). 출 15:13에서 목자처럼 사랑과 관심에 찬 인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팔레스틴으로 인도하시는 것을 상징한다. ‘주께서 그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대하 28:15에서 사람이 약한 자를 나귀에 태워 데리고 가는 것을 묘사한다. 대하 32:22에서는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거민 대적들로부터 구해내어 그들에게 안식을 주는 것을 묘사한다. 창 47:17에서는 기근에 처한 자들을 식물로 먹이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것을 묘사한다.

시편 23:2은 단순한 전원 풍경의 묘사가 아니라, 죄로 인해 유리방황하던 자기 백성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되찾아 영원한 하늘 처소로 옮기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구속 의지를 담고 있다. ‘어리고 연한 풀’인 데셰는 비가 온 뒤 돋아나는 생명력을 상징한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이 생명의 양식은 곧 ‘하늘에서 내려온 산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도가 먹고 기운을 얻는 푸른 초장은 세상의 안락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이다. 목자는 자기 백성에게 다른 것이 아닌, ‘예수의 대속’이라는 가장 신선하고 본질적인 생명의 말씀을 먹여 영혼을 살리신다. ‘누이시며’의 라바츠는 짐승이 모든 경계를 풀고 다리를 뻗어 쉬는 상태이다. 이는 성도가 자신의 공로나 노력을 그치고(Sabbath), 오직 목자의 보호 아래 머무는 ‘전적 타락한 죄인의 전적 의탁’을 의미한다.

칼빈이 강조했듯, 인간은 스스로 안식을 창출할 수 없다. 선한 목자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심으로써 마련하신 그 ‘구원의 마구간’ 안에 거할 때만, 우리는 비로소 정죄감에서 벗어난 진정한 휴식을 누리게 된다. ‘쉴 만한 물가’는 단순한 시냇가가 아니라, 광야 같은 세상 끝에 예비된 영원한 처소(천국)를 가리킨다. 이 메누하는 구약의 가나안 땅을 넘어, 히브리서가 증언하는 ‘남아 있는 안식’이자 요한계시록의 ‘생명수 강가’로 이어진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녀들을 이 땅의 일시적인 위로에 멈추게 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피 값으로 사신 영원한 기업으로 끝까지 인도하신다. 기근 중에 먹이시고, 대적에게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십자가에서 확증되었다. 성령의 다정한 인도는 우리를 죄와 사망의 골짜기에서 끄집어내어, 하나님의 성결한 처소(출 15:13)에 입성시키기까지 멈추지 않는다. 시편 23편 2절의 선한 목자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손과 발에 못이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다. 그분은 대속의 피(푸른 초장)로 우리의 영혼을 먹이시고, 십자가의 성취(쉴 만한 물가)로 우리에게 정죄 없는 안식을 주시며, 성령의 권능(인도하심)으로 우리를 마침내 영원한 하늘 나라의 잔칫상(임마누엘의 완성)에 앉히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가 고백하는 구속사의 정점이자, 성도가 누리는 지상 최고의 복이다.

이재교 목사

<성주 후평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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