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שֶׁפנֶ(5315, 네페쉬) ‘숨쉬는 것이나 호흡하는 존재(피조물), 영혼, 생명’ 등을 의미한다. 나파쉬(שָפנ, 5314: ‘숨쉬다, 원기를 회복하다’)에서 유래했다. 이런 경우에 네페쉬 하이야라는 용어는 생명을 가지고 호흡하는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을 의미한다. 인간적 존재는 본래부터 충동, 욕구, 소망, 의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네페쉬는 그런 의미들로도 사용되었으며, 한 개인의 생명을 의미한다.
소생시키고 회복시키는 대상으로서 네페쉬는 영혼(soul)이라는 개념과 생명(life)이라는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 페쉬는 갈망(시 63:1), 기쁨(시 86:4)의 좌소를 의미한다. 이것은 어떤 것을 더 숙고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영혼’은 그 생명의 운동과 감정의 여러가지 표현을 나타낸다. 영혼은 인간의 내적 능력을 결합한 요소이다.
‘소생시키시고’ בוּשׁ(7725, 슈브)는 ‘(되)돌아가(오)다, 회복하다’를 의미한다. 언약의 공동체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회개의 의미에서), 또는 악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죄를 버리고 부인한다는 의미)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것(배교한다는 의미)을 다루고 있다. 사 30:15에서 ‘너희가 [하나님께로] 돌이켜 안연히 처하여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렘 12:15에서 ‘포로 생활에서의 귀환 개념과 언약에로의 복귀 개념 사이의 관련성은 명백’하다. 포로 생활로부터의 귀환은, 어느 형태의 죄이든 그 죄에서 돌아서는 것 만큼의 갱생이었다. 하나님의 그 어느 쪽의 돌아옴이든 허락한다는 것은 그의 언약적 신실성을 확증해 주는 것이다.
‘의의 길’ קדצֶֶ(6664, 체데크)는 ‘올바름, 공의, 공정, 의로움’을 의미한다. 이 어근은 근본적으로 윤리적 도덕적 표준과의 부합을 내포한다. 그러니 성경에서 언급한 의는 현행 규범의 문제로 귀착하면 인간의 열심히 기준이 된 의가 된다. 사실상 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제시된 대속의 피에 대한 구속의 약속을 하나님의 주권으로 결정하신 그 표준에 전적으로 신뢰한 믿음으로만 법적 효력으로 인정받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시편 23:3은 목자가 양의 상태를 단순히 호전시키는 것을 넘어, 죽었던 생명을 다시 살리고(소생), 그 삶의 방향을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이켜(회개), 하나님의 법정적 기준에 합당한 상태(의)로 이끄시는 재창조의 사역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으신 인간의 영혼은 천하만물을 정복하고 왕같이 다스릴 통치권을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전 인격적인 존재로서 하나님과 유일하게 교제를 나누는 특별한 관계를 허락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출발한 생기가 인간의 코로 들어가 생명을 지속하게 하사 숨쉬고 호흡하는 생명을 가진 영혼과 육체를 부여받았다. 영혼을 가진 인간은 지정의를 가진 ‘살아있는 인격 전체’를 의미한다.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영적인 호흡(나파쉬)이 끊어진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을 갈망하거나 기뻐할 수 없다. 목자이신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위함이 아니라, 죄로 죽어 마땅한 우리의 ‘생명(Life)’ 그 자체를 다시 숨쉬게 하기 위함이다. 이는 칼빈이 말한 ‘중생(Regeneration)’의 첫 걸음이다.
죄와 사망의 자리에서 하나님께로의 돌이킴(슈브) ‘소생시키시고’에 사용된 슈브는 포로된 자가 고국으로 돌아오듯, 배교하고 떠났던 죄인이 언약의 품으로 복귀하는 ‘회개’를 의미한다. 개혁주의 관점에서 이 ‘돌아옴’은 인간의 결단보다 하나님의 신실한 부르심이 선행된다. 목자는 길 잃은 양을 찾아내어 강권적으로 돌이키신다. 이 슈브의 은혜 덕분에 우리는 죄의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복원되는 ‘갱생’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인간의 열심이 아닌 대속의 효력인 ‘체데크’는 가장 핵심적인 결론 ‘의의 길’에 있다. 여기서의 의는 인간의 도덕적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표준에 부합하는 상태이다. 법정적 의(Justification)로 하나님이 선언하시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은 결코 스스로 이 표준에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너는 의롭다’고 선언해주시는 ‘전가된 의’이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자격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언약적 명예(자기 이름)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의 피 값으로 사신 백성을 반드시 의로운 자로 만드셔야만 당신의 영광이 보존되기 때문이다.
칭의에서 성화로 가는 구원의 여정으로서 시편 23:3의 결론은 명확하다. 선한 목자는 단순히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려내어(네페쉬-슈브), 자기의 의로운 옷을 입혀(체데크), 끝내 천국 성소까지 끌고 가시는 구원의 주권자이다. 이 인도하심은 인간의 열심이나 종교적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예수의 피 값’과 ‘하나님의 신실하신 이름’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이 의의 길은 실패가 없으며, 성도에게는 가장 안전한 요새가 된다.
이재교 목사
<성주 후평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