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선교-소명의 사이렌] 권리 위에 잠자는 자와 하나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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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세상살이에서 중요한 두 흐름은 투쟁(鬪爭)과 은혜(恩惠)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투쟁’이 더 가깝겠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은혜’가 더 가까운 개념이다. 법학의 오래된 법언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되지 않는다.”는 말은 법의 정신을 압축한 선언이다. 19세기 독일 법철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법의 목적은 평화이지만 그 수단은 투쟁이다.”라고 했다. 법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불법에 저항하는 살아 있는 힘이며, 부정의 앞에서 항거할 때 생명력을 얻는다.

예링에게 권리는 단순한 사적 이익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 조건이며, 물질적·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정신적·인격적 가치까지 포함한다. 더 나아가 공동체의 이익으로 확장된다. 따라서 권리를 위한 투쟁은 곧 법을 위한 투쟁이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다. 그는 “투쟁은 법의 영원한 노동”이라고 강조했다. 이 작은 책은 강연 원고였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권리 위에 잠들어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자신의 법감정에만 몰두해 공동체의 질서를 흔들고 있지는 않은가? 예링은 후속 강연 「법감정의 형성에 관하여」에서 ‘소송중독’이 아니라 ‘건강하고 강렬한 법감정’을 강조했다. 법과 도덕은 역사 속에서 형성되며, 법감정 역시 사회적 경험 속에서 길러진다. 개인의 감정이 곧 공동의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행동이 정의를 세우지만, 때로는 절제가 공동체를 지킨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법은 권리를 위해 깨어 있으라 말하지만 복음은 사랑 안에서 깨어 있으라 초대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주장 이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가 권리를 행사하기 전에 먼저 은혜를 베푸셨다. 인간의 권리는 투쟁을 통해 확보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은혜로 주어진다. 그러나 은혜는 체념이 아니라 책임을 일깨운다. 불법과 불의를 묵인하지 않는 양심은 신앙을 살리지만, 그 저항은 사랑 안에서 절제되어야 한다.

오늘 사회는 인권과 자유 등 권리 담론으로 가득하다. 이는 민주사회의 소중한 자산이지만, 권리가 커질수록 책임도 함께 자라야 한다. 권리가 개인의 이익에만 머물면 공동체는 분열되고, 이웃의 존엄을 지키는 방향으로 사용될 때 사회는 성숙해진다. 우리의 교회 역시 예배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책임을 가진다. 권리 주장과 사랑 실천은 대립하지 않으며, 사랑은 권리를 더 깊고 넓게 만든다.

예링이 말한 ‘투쟁’은 물리적 충돌만이 아니라 설득과 인내, 공론 형성, 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까지 포함한다. 신앙의 투쟁도 미움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인내이며 정의를 향한 헌신이다. 그리스도인의 법감정은 십자가 앞에서 형성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자리로,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면서도 죄인을 포기하지 않는다. 거기서 우리는 정의와 자비의 균형, 권리를 지키되 사랑을 잃지 않는 길을 배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랑 위에 잠자는 자”는 어떠한가? 사랑 위에 잠든 신앙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은혜를 값싼 위로로만 소비하는 교회는 공동체의 빛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 침묵해야 할 때와 말해야 할 때, 참아야 할 때와 행동해야 할 때를 분별하게 한다. 건강한 신앙 역시 기도와 말씀, 공동체적 성찰 속에서 자라난다. 개인의 감정이 곧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결국 권리를 위한 투쟁과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권리를 지키는 일은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는 일이며 그 존엄은 하나님의 형상에서 비롯된다. 중요한 것은 방식과 태도이다. 권리를 주장하되 교만하지 말고, 사랑을 말하되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깨어 있는 권리의식과 책임지는 사랑이 함께할 때 사회는 건강해진다. 법은 질서를 세우고 사랑은 생명을 세운다.

권리 위에 잠들지 않는 시민, 사랑 안에서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많아질 때 법은 생명을 얻고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다.

김성제 시인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재난과학박사, 우리응답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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