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마을 목회가 목회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을 목회가 도외시된 배경에는 성전 중심의 신학 영향, 영지주의 이원론의 영향, 중세 교권의 타락과 정교분리 영향, 유사 목회의 부정적인 영향 등을 들 수 있습니다. 본 장에서는 먼저 1. 신학적 인식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합니다.
1) 성전 중심 신학의 영향: 마을 목회가 도외시된 배경에는 성전 중심 신학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구약성경의 성막(출애굽기)과 솔로몬 성전(열왕기상)이 하나님이 거하는 장소로 기록된 성경을 들어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하나님께서 성전 안 곧 지성소에 계신다는 성전 중심의 신학이 마을과의 소통을 멀리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2) 영지주의 이원론의 영향: 초기 기독교 시기(2~3세기경)에 유행했던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이단 사상의 영향으로 교회는 세상과 멀어지게 됐습니다. 영지주의는 당시 주류 기독교와는 상당히 다른 세계관과 구원론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세상을 영(정신)과 물질로 나누고 영적 세계는 선하고 완전한 신이 존재하는 곳이며 물질세계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악하고 불완전한 세계로 보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원은 영적인 영역에만 국한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영지주의 사상은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이런 영향을 받아 교회가 마을로 나가는 것을 소홀히 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말라’는 말처럼 교회가 세상을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3) 중세 교권의 타락과 정교분리 영향: 중세 유럽에서 교회는 단순한 종교 기관을 넘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하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교회가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쥐면서 점차 본래의 영적 사명을 잃어버리고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타락상으로 성직을 매매했습니다.
교회의 직위가 영적 능력이나 신앙심이 아닌, 돈과 권력에 의해 거래되었습니다. 높은 성직에 오르면 막대한 토지와 세금 징수권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귀족 자제들이나 재력가들이 교회의 요직을 사들였습니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질 없는 성직자들의 양산으로 이어졌고 성직자의 도덕적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성직자의 도덕적 타락은 심각했습니다.
독신주의를 지켜야 했던 성직자들이 공공연하게 첩을 두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며 귀족처럼 군림했습니다. 또 고해성사 후 죄의 대가를 면제해 준다는 의미였던 면벌부가 점차 교회의 재정 확보 수단으로 변질되었고 또 교황이 영적 지도자이기보다 세속적 군주처럼 행동하며 영토 분쟁과 전쟁에 개입했습니다. 이와 같이 중세 교권이 정치권력과 결탁해 타락했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과 거리를 두고,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한다는 생각이 전통과도 같이, 관습같이 교회 안에 내재되어 있었고 그런 영향으로 교회는 세상과 멀어지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4) 유사 목회의 부정적인 영향: 먼저의 글(10회)에서 언급한 것처럼 마을 목회와 유사한 민중신학, 공공신학(공적선교), 예수촌 운동, 가나안 농군학교, 기타 마을공동체 운동 등이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교회가 주도권을 가지고 정부와 대립하고 투쟁하는 과격한 모습을 보인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정부와 투쟁하는 교회? 약자만을 위한 교회? 이런 부정적인 요인들로 인해 교회가 마을 목회를 소홀히 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강대석 목사
<화전벌말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