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앙의 자리] 종로 (28) 전쟁과 분열의 시대, 교회는 피난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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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과 미망인 품고 통합 측 총회의 출발점 된 연동교회

연동교회 ③ (연지동 136-12)

한국교회가 세워지는 초기, 서울 장안에 세워진 교회들은 종교와 문화 충격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이미 앞에서 찾아보았던 승동교회가 그랬듯이 연동교회도 신분의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히면서 분열의 아픔을 경험했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장로교 선교부가 자리하고 있는 연지동에 자리하고 있는 이 교회는 아무래도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선교사들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던 교회인지라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은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제의 박해가 심화되던 1934년에는 설립 40주년기념부흥성회를 주기철 목사를 강사로 초청해 열었다. 이때 이미 늘어나는 신자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배당을 새로 짓기로 했다. 부흥회에서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이듬해 새로운 예배당을 마련했다. 

  해방 이후 서울 장안에 있었던 교회들이 그랬던 것처럼 3.8선 이북에서 피난을 온 신자들을 맞아야 했던 연동교회는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북한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내려온 목회자들과 피난민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그렇다고 갑자기 별도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예배당을 피난민을 위한 수용시설로 개방을 했다. 쉽지 않는 결정이었지만 피난민들을 위해서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연동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가장 어려운 때에 구조선과 같은 역할을 했기에 피난민들의 기억에는 결코 잊힐 수 없는 교회가 되었다.

6.25사변이 한창이던 1952년에는 전쟁으로 인해서 남편을 잃고 사지에서 방황하는 미망인들을 위한 모자원을 설립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쟁미망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 그들을 섬기겠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연동교회는 어려운 결정과 함께 모자원을 설립해서 전쟁이 끝나고 정치적으로 안정을 확보하게 된 1964년까지 운영함으로써 갈 곳 없이 절망 중에 있던 미망인들과 딸려있는 아이들을 함께 보살폈다. 오갈 곳 없는 그들에게 모자원은 생명과 감사의 터전이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몰려드는 신자들을 다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전쟁 때 피난 내려온 북한 출신 신자들과 전쟁 후에 먹을 것을 찾아서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들면서 예배당 공간이 더 비좁게 되었다. 따라서 전쟁 직후이지만 예배당을 다시 짓기로 하고 1954년 설립 60주년기념을 맞으면서 새로운 예배당을 마련했다. 현재의 예배당은 1977년 매우 획기적인 예배당의 설계로 지은 것이다. 웅장하거나 압도하는 분위기가 아닌 매우 편안하면서도 접근하기 쉬운 분위기의 예배당이기에 좋은 느낌이다. 

한편 한국장로교회가 세 번째로 분열하던 1959년도에 연동교회는 현재의 통합 측 교단이 출발하는 곳이 되었다. 당시 대전중앙교회에서 열렸던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총대문제로 개회와 동시에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은 정회한 상태에서 일부의 총대들이 서울로 올라와서 연동교회에 모여서 속회를 함으로 통합 측 총회를 구성했다. 사실상 합동 측과 통합 측으로 분열하는 장소가 되었다. 이에 반대한 총대들은 후에 따로 근처에 있는 승동교회에 모여서 수습총회를 함으로써 현재의 합동 측 교단을 만들었다.

선교부와 같은 자리에 있었던 연동교회는 설립 초기부터 많은 교회들을 세웠다. 멀리는 경기도 안성에 서리교회(현 안성중앙교회)를 1902년에 세운 것을 비롯해서 왕십리교회(1905), 양평 상심리교회(현 상심교회 1906), 뚝섬교회(현 성수동교회, 1906), 숭신교회(현 명륜중앙교회 1908), 동정동예배처소(1908), 신당리교회(1927), 경기 광주 태전교회(현 피봉교회 1957), 사능교회(1960), 광암교회(1966), 불암교회(1969) 등 1960년대까지 많은 교회들이 연동교회를 통해서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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