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신앙의 자리] 연동교회 세우고 조선을 깨운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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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번역과 교육·YMCA 창립으로 한국교회 기초놓은 게일

게일① (James Scarth Gale)

연동교회를 찾노라면 1970년대에 건축된 예배당답게 소박한 외관과 좁지만 예배당 입구에 작은 공간을 접하게 된다. 높지 않은 계단을 올라서면 좁은 공간이지만 숨을 크게 쉴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하는 곳이 있다. 낮은 단풍나무가 심겨져 있고, 그늘 아래에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낮은 언덕을 이용해서 예배당을 앉혔기 때문에 다가가기 부담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예배당으로 이어지는 발걸음에 장애물이 없다.

바로 그 자리에 작은 흉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 교회의 초대 담임 목사였던 게일 선교사다. 게일은 이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에 동참해 담임이 되어 작은 공동체지만 교회로 세우는 역할을 했다. 이때 게일은 막 태어난 한국 장로교회의 독립노회 노회장(2대 1908, 4대 1910)을 맡아서 섬기기도 했다. 여기서 게일을 찾아보는 것은 단지 이 교회의 담임이었기 때문이 아니고, 그가 이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면 이 땅에 남긴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기 위함이다.

게일 선교사는 본래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캐나다로 이민한 후예로 캐나다에서 나고 자랐다. 처음 조선을 찾아올 때는 독립 선교사 신분이었다. 따라서 그는 조선에 들어와서 장소나 선교부 조직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했다. 그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출생해서 토론토대학을 졸업(1888)하고 그해 12월 16일 토론토대학 YMCA가 파송한 선교사로 조선에 왔다. 조선에 온 이듬해인 1889년부터 1891년까지 황해도 해주, 경상도, 부산 등을 순회하며 조선을 알아가면서 전도했다.

1890년부터는 조선성서공회 전임번역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선성교서회 창립위원으로 수고했다. 그가 평신도로 성경번역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탁월한 어학실력 때문이다. 그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어학실력은 단지 성경 번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적인 소양도 남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글과 저작물을 남겼고, 영문학서적을 우리말로 번역해 서양 문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또한 우리나라 문학을 서양세계에 알리는 일 역시 그의 큰 공헌이다. 

이렇게 독립선교사로 활동을 하던 중 1891년 8월 31일 그를 파송한 토론토대학교 YMCA선교부가 해체됨으로 그는 후원자가 필요함으로 어떤 선교부에 소속되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이때 그는 미국 북장로교회 선교부에 소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1892년 3월 14일 원산으로 가서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그해 4월 7일 원산에서 헤론(Harriet G. Heron) 여사와 결혼했다. 그녀는 북장로교회 의료선교사로 내한해 제중원을 맡아서 수고하던 헤론 선교사의 부인이었다. 남편이 병으로 별세한 지 2년이 지난 때였다. 이때 헤론에게는 애니(Sarah Anne, 6세)와 제시(Jessie Elizabeth, 4세)가 있었다.

게일은 목사가 아닌 평신도 선교사로 활동을 하던 중 1897년 5월 13일 안식년을 얻어 미국으로 가서 인디애나주 뉴 앨버니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돌아왔다. 따라서 그의 사역의 범위가 넓어지게 되었다. 1899년 9월 원산 선교구가 캐나다선교부로 이첩되면서 그는 원산을 떠나 서울로 사역지를 옮겨야 했다. 이때 그는 연동교회 담임으로 부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게일 선교사가 연동교회 담임으로 부임하는 것은 사실상 그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첫 번째 담임 목회를 하게 된 곳이고, 그는 연동교회에서 은퇴할 때까지 일을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게일 선교사는 연동교회 담임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이후 이 교회는 그의 평생 사역이 펼쳐지는 중심 무대가 되었다.

이종전 박사

<인천기독교역사문화연구원 원장, 개혁파신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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