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는 바르트라는 거대한 토양 위에서 자라난 신학자였다. 청년 본회퍼에게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늪에서 건져준 구원자와 같은 스승이었다. 바르트가 선포한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계시의 우위는 본회퍼 신학의 굳건한 기초가 되었으며, 본회퍼가 평생 견지했던 그리스도 중심주의 역시 바르트의 신학적 유산 아래 있었다. 바르트의 견고한 신학적 토대가 없었다면 본회퍼의 뜨거운 ‘제자도’ 역시 방향을 잃은 열정에 그쳤을지 모른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초월성을 수호하며 신학의 엄밀한 체계를 세우는 데 집중했다면, 본회퍼는 그 말씀이 나치즘이라는 광기의 시대 속에서 어떻게 구체적인 행동으로 육화되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본회퍼는 바르트의 신학이 자칫 하늘 위에만 머무는 관념이 될 것을 우려하며 ‘계시의 실증주의’라는 날카로운 비판을 던지기도 했다. 이는 바르트가 세운 위대한 신학적 원리가 고통받는 이웃을 향한 섬김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제자의 충직한 촉구였다.
이러한 비판은 거장 바르트에게 깊은 신학적 수정을 불러일으켰다. 바르트는 본회퍼가 처형당한 후 그의 옥중 서신들을 읽으며 자신이 놓치고 있었던 신앙의 실천적 지평을 확인했다. 이 변화는 바르트의 생애 마지막 역작인 『교회교의학(KD)』의 후반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인간의 구체적인 책임과 응답, 즉 삶 속의 섬김으로 완성되어야 함을 강력히 긍정했다. 거장 바르트가 자신의 신학적 완성을 위해 본회퍼라는 실천적 열매를 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이 도달한 견해 일치의 핵심은 ‘칭의’와 ‘성화’를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칭의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화의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점에 두 거장은 뜻을 같이했다.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는 본회퍼의 선언은 바르트의 후기 신학에서 성화를 칭의의 필연적인 결과로 서술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다. 바르트의 신학적 엄밀함과 본회퍼의 실천적 야성이 하나로 만난 결과다.
바르트와 본회퍼는 모두 나치즘이라는 거대한 광기 앞에 신앙으로 맞섰던 인물들이다. 이 두 거장의 사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세상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오늘날 교인들이 해야 할 일은 머리로 믿은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