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산책] 사랑과 안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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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갑자기 “너 지금 무얼하며 살고 있느냐” 하고 물어도 “예, 나는 지금 사랑과 안식을 위해 지금 여기 이 정도의 단계를 지나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미혹에 빠져서 넘어질지도 모를 일이며 또한 축복마저도 요원한 일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넘어서야 할 목표의 차원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안다면 그리고 얼마나 그 차원이 높은지를 안다면 누구도 그 달음질을 멈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달음질의 가장 높은 꼭대기에 바로 사랑과 안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우선 이 푯대가 바울처럼 뚜렷하게 서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흔들림도 사라질테니 말입니다.

그렇듯 믿는 일에는 누가 뭐래도 ‘위하여’가 먼저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구원에는 두 방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로부터의 구원과 사랑과 안식으로의 구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죄로부터의 구원에 안주함으로 말미암아 그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단번에 은혜로 주어진 보혈의 구원을 안다면 이제는 그 보혈을 지나 사랑과 안식을 위해 그 푯대를 정하고 쉼 없이 자신을 곧추세우며 매진에 매진을 계속하는 방향성이 뚜렷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 이룸의 정도가 또한 바로 우리의 축복이 되고 우리의 상급이 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고서 말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나 천국은 사랑으로 이르는 자리입니다. 이것이 소홀히 취급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아픔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정모라는 생물학자가 있습니다. 그분이 ‘세바시’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런 말을 했는데 우리도 한 번 묵상해 보고 종말을 예측해 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인류는 2150년 경에 멸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때 AI는 지능화가 되어서 이것을 지켜볼 것입니다만 그것을 본 그들이 멸망한 인류에 대해 이렇게 회고할 것으로 또한 예상이 됩니다. 

“인류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었는데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멸망했노라” 하고 말입니다. 과거의 인류 멸망사들을 되짚어보아도 그 멸망 원인은 항상 다양성의 상실 즉 사랑 없음으로 인해 기인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돈이 되는 것만을 남기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천시하는 풍조가 멸망을 가져오곤 한 것입니다. 지금 멸망을 130년 정도 앞둔 이 시점에서 우리 인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다양성을 살려 좀더 사랑함을 추구해야만 그것을 늦출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해답은 ‘함께’에 있습니다. 돈 되는 것만의 추구가 아닌 사랑 말입니다.’

그가 신앙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송구한 마음과 함께 주님의 이 안타까운 말씀이 떠오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9)   

김용덕 목사

•인천 영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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