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다녀온 뒤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까 두려워, 정신이 맑을 때 감사의 간증문을 먼저 쓰며 마음판에 새기고 독자들과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
2월 23일, 아내가 새 학년 담임을 맡을 교실을 청소해 주며 보람을 느끼고 가족들과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왼쪽 엄지발가락 관절이 서서히 붓고 아파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 제품인 발열 파스를 붙이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오후에도 차도가 없어 사진을 찍어 증상을 설명하며 AI 상담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처음 접하는 ‘통풍’이라는 가진단을 받게 되었다. 가급적 빨리 병원 진료를 받으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이미 해가 저물었고 응급 상황은 아니라 판단해 다음 날 비번에 병원에 가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절뚝거리며 교회 긴급회의에 다녀온 뒤 아내에게 이야기하니 파스 대신 얼음으로 냉찜질을 해주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길, 다행히 오토 차량이었고 오른발은 이상이 없어 운전은 가능했다.
기동력이 떨어진 상태였지만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 교대근무 상황을 점검하고 업무 지시를 하며 24시간 현장지휘관 당번근무를 시작했다. 매달 25일은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금식기도일이라 직원들도 이미 알고 있는 날이다. 오전에는 전통시장 소방통로 확보 훈련을 구청과 경찰 등 유관기관과 함께 진행했고, 오후에는 아파트 화재 현장에 출동해 상황을 수습했다. 절뚝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벽을 잡고 천천히 움직여야 했고, 직원들과 시민들이 보기에 안타까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무실에 돌아와 119구급대원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진통제를 주며 밤에는 통증이 더 심해질 수 있으니 병원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응급구조사 자격을 가진 팀장도 병가를 권했지만 현장지휘관으로서 자리를 비우기 어렵다는 책임감 때문에 쉽게 결단할 수 없었다.
저녁에는 아내가 대신 금식기도에 참여했고, 나는 구내식당에서 출동 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감기 기운이 있어 직원들과 접촉을 최소화한 채 사무실로 돌아와 ‘도쿄와 후지산에서 재난안전과 ESG를 찾다’라는 현장 에세이집 집필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밤이 깊어지면서 통증은 점점 심해졌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통풍의 위력을 실감하는 밤이었다. 신발은 물론 슬리퍼를 신는 것도 힘들었고, 양말을 신고 벗는 일조차 고통이었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복도를 이동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교대시간까지 12시간이나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욱 막막하게 느껴졌다.
어둠 속에서 혼자 많은 생각을 하며 기도했다. 이 고통을 주님은 아실까 여쭈어 보았다. 그때 자연스럽게 ‘광야를 지나며’ 찬양이 흘러나왔다.
“주님만 내 도움이 되시고, 주님만 내 빛이 되시는 주님만 내 친구 되시는 광야 주님 손 놓고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곳 광야 오직 주님 뜻만 이루어지기를 나를 통해 주님만 드러나시기를”
이 밤에도 관내 시민들과 건물, 동물들이 평안하고 지나가는 차량과 비행기까지 안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다 문득 얼음찜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 냉동실에서 물병을 꺼내 발에 대고 냉찜질을 하니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행정 통계상 하루 평균 3.8건의 화재 출동이 있지만 그날 밤은 주님의 은혜로 아무 출동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아침이 되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절뚝거리는 나를 보신 조리실장님이 만류에도 불구하고 식판을 들어 내가 앉는 자리까지 가져다주시며 “쾌유를 빕니다”라고 인사해 주셨다. 식사 후에는 팀장이 식판을 대신 반납해 주었다.
아침을 먹을 수 있는 평범한 행복과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린다. 퇴근 후 119 구조대원의 부축을 받으며 차량에 올라 통풍 전문 클리닉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고, 그 과정 속에서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한 번 체험하게 되었다.
김성제 시인
<소방청 인천부평소방서, 재난과학박사, 우리응답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