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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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義)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義)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 의는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에 의한 새로운 계시’이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의’(Righteousness from GOD)이다. 이 의(義)는 믿음을 통해서만 받는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봉독(奉讀)할 때마다 감사, 감격스러운 말씀이다.

불의(不義)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방식이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는 법률적 용어이다. 그 반대는 ‘정죄’(定罪. Condemnation)이다. 둘 다 재판관의 판결이다. ‘칭의’는 ‘사면’(赦免)과 동의어일 수 있다. 왜냐하면 ‘칭의’는 단지 용서, 곧 값 없이 주시는 용서이기 때문이다. ‘사면’은 처벌이나 부채를 면제해 주는 것이다.

‘정죄’(定罪)는 죄를 지었다고 또는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칭의’는 의롭다고 선포하는 것이지 의롭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칭의’(새로운 신분)와 ‘중생’(重生. 새로운 마음)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일어난다. 칼빈에 의하면 “어느 누구도 중생(重生)함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을 수 없다”고 했다. 믿음으로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 그리고 성화(聖化)로서 일생 동안 우리는 힘쓰고 애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아 영화(榮華)롭게 된다.

칭의는 값 없이, 선물로서, 무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 전적으로 우리에게는 과분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되는 것이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자신을 자비롭게 내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 은혜로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들을 값 없이 의롭다 하신다면 어떤 근거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답은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라고 하신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십자가가 없다면 불의한 자를 의롭다고 칭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다. 하나님은 이에 근거해 불의한 죄인들을 의롭다 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극진하신 사랑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和睦 祭物)로 세우셨다.”, “이는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의 피는 우리의 죄에 대한 속전(贖錢)이 되어 주셨다. 죄의 포로 가운데에 있는 우리를 사서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케 하는 속죄소(贖罪所)가 되신다. 속죄소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구원의 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의 성취일 뿐 아니라 사랑의 ‘나타내심’  ‘계시’이다.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기 위해 십자가에서 그 죄들을 처벌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신 것이다. “십자가의 도(道)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는 치유하는 능력, 깨끗하게 하는 능력, 죄사함의 능력, 용서의 능력이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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