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은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메시야가 오시면 이스라엘을 다른 나라의 압제에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많은 이적을 베푸시자 그가 구약 성경에 예언된 그 메시야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예수님의 12제자들까지도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땅으로 등극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따랐다. 그러던 중에 예수께서는 공생애 사역 3년째 되는 해 유월절이 포함된 주간의 첫날에 생애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실 때 제자들과 많은 백성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깔기도 하고 길가에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서 깔아드리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를 외치며 뒤따라 올라갔다. 바로 여기서 종려 주일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유대 나라의 풍습 가운데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즉 왕이라든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 장군에게는 자기의 겉옷을 깔든지 종려나무 가지를 깔고 흔들어 환영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제 예수님께서도 평화의 왕으로서 자기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의 의도와 예수 그리스도의 입성 목적은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구약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를 정치적 군사적 메시야로 오해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자기들의 억울함과 고난이 해결되기를 바랐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로마 군대를 무찌르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신 것이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힘에 의한 정복을 기대하고 있었다면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하고 드리는 섬김에 의한 지배를 기대하고 있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가 된 이래 세상의 많은 통치자들이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승리의 입성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입성은 화려하고 찬란했다. 그러나 그들의 승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그러나 그의 입성은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지기 위한 입성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를 이기고 죽음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셨다. 또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로 믿으면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고 천국 가게 되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리는 세상 통치자들과 달리 영원하고 무궁한 것이 되었고 지금도 만왕의 왕과 만주의 주로서 하늘 보좌에서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을 영원히 통치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왕으로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나 중심이 아니라 주님을 중심으로, 나 위주가 아니라 주님을 위주로, 나 우선이 아니라 주님을 우선으로, 나 제일주의가 아니라 주님 제일주의로 살아가야 한다.
김 규 목사
<양평동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