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쟁이 벌써 40여 일을 넘긴 요즘,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유가가 오르고 생필품이 품귀현상을 보이는 등 우리의 일상생활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곧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닥칠 것이며, 온 세계가 3차 세계대전에 휘말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우리 주위에 떠돌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인 중에는 요한계시록이 예언한 세상의 마지막 때가 시작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동문제는 참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다. 예루살렘을 성지로 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의 종교적 갈등에다가, 아랍세계가 서양과 대결하는 문명사적인 충돌, 그리고 중동석유를 둘러싼 경제적인 이해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중동에서 일어난 작은 분쟁의 불씨는 언제든지 세계를 뒤흔들 만큼 폭발적이다. 여기에 미국이 군사력을 동원해서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우리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근본적으로 중동문제는 1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이 오스만제국을 격퇴하고 중동지역을 지배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 천 년 이상 유대인은 아랍세계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왔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 유대국가를 건설하려는 시오니즘이 영국의 힘을 앞세워 1948년 실제로 이스라엘 건국에 성공하게 되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고향과 삶의 터전을 잃고 쫓겨나 난민이 되었고 이스라엘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하게 된다. 이 적개심의 정도는 종교적 차원으로 비화하면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오죽하면 하마스 무장단체가 단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낼 뿐 아니라 지구끝까지 쫓아가서 박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주장할까. 그 증오심은 히틀러의 나치보다도 결코 덜하지 않다.
게다가 미국을 비롯한 유럽은 이스라엘을 배후에서 지원할 뿐 아니라 석유자원을 착취하고 이슬람의 문화와 자존심을 짓밟는 악의 세력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서양에 대한 증오심도 결코 이스라엘에 못지않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라고나 할까. 이란이 하마스와 헤즈볼라, 그리고 후티반군을 지원하고, 서양에 협조적인 사우디, 쿠웨이트, UAE 등도 형제를 배신한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증오와 적개심은 상대를 괴롭힐 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도 파괴하는 법이다. 필자는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그것을 실감했다. 유대인들은 서구문명의 과학기술로 무장해 사막 한가운데서도 첨단농업과 하이테크 산업을 일으키고 부유하게 사는 반면, 아랍인들은 현대문명과 과학기술을 외면하고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면서 중세에 살고 있다. 아랍인은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오직 이스라엘과 서양의 지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인생을 적개심과 분노에 소모하고 있다. 비교적 이슬람 근본주의가 덜하다는 이집트조차도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고 사회를 개혁할 의지가 없다.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민족은 상대방의 장점을 배우고 자신의 힘으로 실력을 키워 상대를 극복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중동에서 강자는 이스라엘과 미국이다. 아랍인들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테러로 대응할 뿐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은 테러공격에 그 이상으로 공격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세상 이치는 똑같다. 강자는 자신의 힘을 마음껏 휘두르기 전에 먼저 약자의 처지를 공감하고 보듬어야 한다.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마음에서 증오심을 거둘 수 있도록 인내하며 어루만지는 노력이 없이는 중동문제는 해결이 불가능해 보인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