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그것은 지금도 가장 지엄하신 하나님 명령이다. 우리는 선교사의 덕택으로 오늘의 풍요를 누리고 있음에도 그 은혜를 거의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선교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머리로는 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에서 그 열망이 끓고 있는가 물으면 부끄러워지는 수준이 바로 나다.
오늘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앞에서 한국여성의 은인 중의 한 분이라 할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을 만났다.
우리나라에 선교사 남편을 따라 들어와 함께 선교를 하면서 우리나라 여성에게 큰 빛을 던진 의료선교사의 역할을 한 분이어서 그분의 하늘길 75주기를 추모하는 마음에서다.
1865년에 미국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1890년에 조선 땅에 선교사로 발을 딛은 후 1933년 건강이 안 좋아 미국으로 돌아가기까지 43년 동안 조선의 여성들을 위한 의료 선교에 몰두했다.
그동안 남편을 잃고 딸마저 먼저 보내는 아픔을 겪었지만 그의 조선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평양에서 의료 활동을 하면서 최초의 맹학교를 설립해서 운영하기도 하고 여성 전문 진료소 광혜여원을 설립 운영하기도 했다.
심한 화상을 입은 환자를 위해 자신의 피부를 떼어 이식 수술을 해서 치료하는 등 상상하기 힘든 정도의 열정과 헌신으로 주위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평양에서 주로 의료 활동을 하다가 서울로 옮겨와서 1928년에 조선 여자 의학 강습소를 설립해서 조선 여성 의학 교육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 강습소가 바로 오늘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시초가 된다. 1933년 로제타 홀이 은퇴한 후에 한국인 의사 김탁원, 김정희 부부에게 인계된 이 강습소는 경성여자 의학 강습소로 운영되었다.
1938년 민족 자본가 우석 김종익 선생의 기부로 경성여자 의학 전문학교로 승격되었다.
훗날 수도 의과 대학으로 남녀공학이 되었고 우석대학을 거쳐 1971년 고려대학교와 합병했다. 여성은 진료를 받을 수 없었던 조선의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로제타 홀의 선구적 발걸음이 우리나라 여성의 의료 혜택을 크게 향상시킨 것을 생각하니 그 헌신에 깊이 감사하며 눈가가 젖어 온다.
오경자 권사
신일교회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