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정의 달,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은인들!

Google+ LinkedIn Katalk +

가정의 달 5월,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이 있다. 어린 시절 질병으로 건강하지 못했던 필자는 가족과 이웃,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보살핌 속에 성장 과정을 지나 사회에 진출할 수 있었다.

농촌 시골 대가족 안에서 형제들의 양보와 부모님의 사랑, 이웃들의 도움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질병 치료를 위해 부모님 등에 업혀 의원을 찾아다니던 기억도 떠오른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시절 신작로 10리길을 함께 걸으며 책가방을 들어주고 걸음을 부축해 준 친구들의 도움이 큰 힘이 됐다. 여름이면 부채를 들고, 겨울이면 보자기를 들고 마중 나오던 누님의 헌신 덕분에 초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자전거에 태워 등하교를 도와준 친구들 덕분에 학교를 개근하며 마칠 수 있었다. 체육 선생님과 교련 선생님도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 성적평가를 해 주셨다. 대학 진학을 준비하며 홀로 학교에 남아 공부할 때에는 기숙사 사감 선생님께서 야간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삼형제가 자취하던 시절에는 남동생이 식사 준비를 도맡았고, 자취방 주인댁은 반찬과 간식, 연탄불까지 챙겨주며 가족처럼 돌봐주셨다. 대학 졸업식에도 찾아와 축하해 주셨던 따뜻한 마음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은혜로 남아 있다.

대학 시절 민주화로 혼란스럽던 시대 속에서는 지도교수님께서 늘 걱정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학생회 활동을 하던 제자가 시위에 가담할까 염려하며 자주 찾아오셨고, 이후 대학원 진학까지 권유해 주셨다. 교수님 댁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큰 은혜였다.

돌아보면 성장 과정과 직장생활까지 수많은 은인들의 도움 속에 살아왔다. 후천적 장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차별보다 과분한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남은 삶도 봉사하며 이웃들에게 다가가고자 한다.

신혼 초에는 어머님의 뇌경색으로 병원과 집을 오가며 병수발을 했던 아내에게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가정은 결국 희생과 돌봄 위에 세워진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필자는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와 농림어업총조사에 참여하며 농촌 현실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지방소멸과 고령화 속에 70대 이상 노인들이 농촌을 지키고 있었고, 1인 노인가구와 다문화가정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들은 도시 산업에 노동력을 공급하고 자녀 교육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희생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OECD 최고 수준의 노년 빈곤이라는 아픈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노인세대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보릿고개를 견디며 가족과 나라를 위해 살아온 세대다. 그들의 삶은 야곱처럼 험한 세월의 연속이었다. 아프리카 속담에는 “노인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와 키케로 역시 노년의 지혜와 판단력을 강조했다.

오늘 우리 사회는 저출산과 청년실업, 1인 가구 증가 속에서 가족의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 2024년 기준 1인 가구 비율은 36.1%에 이르렀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족 공동체의 모습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가족 없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삶의 가장 가까운 안식처 역시 가족이다. 초고령화 사회를 맞은 지금, 우리는 부모 세대의 희생과 공동체의 온정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조상인 장로

<안동 지내교회, 고암경제교육연구소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