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생명 곁 지키는 일, 하나님이 맡기신 소명”
소아 장기이식 현장에서 바라본 생명과 신앙, 그리고 교회의 책임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이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로비에도 걸려 있습니다. 매일 그 말씀을 마주하며 그렇게 살고자 애쓰지만, 또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이 저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외과 과장을 맡고 있는 인경 교수는 소아 장기이식 분야 의료진으로 생사의 경계에 선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다. 인경 교수는오랜 시간 소아 간이식과 선천성 기형 환아들을 진료하며 의학의 한계와 인간의 무력함, 그리고 생명의 소중함을 가까이에서 마주해 왔다. 그러나 인경 교수는 “현장에 있을수록 더욱 분명해진 것이 있다”며 “결국 생명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의사는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생명을 완전히 책임질 수 있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래서 수술실에 들어 갈 때마다 늘 하나님 앞에 서는 마음이 됩니다.”
약한 생명 돌보는 일이 하나님 시선과 가장 가까운 일
영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인경 교수(전장연 전 부회장 나선환 장로 아들)는 어린 시절부터 주일학교를 통해 말씀 안에서 성장했다. 인경 교수는 “의사의 길 역시 단순한 직업적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소명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가족 중에 의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배경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주일학교에서 배운 말씀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이 늘 마음 깊이 남아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이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시는 시선과 가장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하게 됐습니다. 부모님 역시 세상적으로 성공한 의사가 되기보다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소아외과라는 길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인경 교수는 말한다. 성인 진료에 비해 의료진도 적고 수술 난도 역시 높다. 무엇보다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쏟아야 하는 시간과 책임의 무게가 매우 크다. 그러나 인경 교수는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 결국 한 가정과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일이라는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 가고 있다.
특히 인경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생명을 돌보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자리라고 느꼈다”며 “그 마음이 결국 소아외과라는 길로 이끌었다”고 말했다.
“한 아이의 인생은 단지 몇 년의 문제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 바라봐야 하는 인생입니다. 그 아이가 회복되어 살아가는 긴 시간을 생각하면 결국 그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 사회 전체에 큰 파장을 남기는 일이라고 믿게 됩니다.”
첫 간이식 환자… 결국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인경 교수가 맡고 있는 소아 간이식과 간담도계 선천성 기형 수술은 결과를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영역이다. 특히 소아 간이식은 수술 중 생명의 위기를 마주할 가능성도 높은 고난도 수술이다. 작은 몸 안의 혈관 하나, 수치 하나에도 아이의 생명이 흔들릴 수 있다. 수술이 끝난 뒤에도 긴 시간 중환자실에서 또 다른 싸움이 이어진다.
인경 교수는 지금도 자신의 첫 간이식 집도 환자를 잊지 못한다고 회고했다.
“당시 두 살이던 아이는 간이식을 받지 않으면 48시간을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부모 역시 간 기증이 어려운 상태였고 아이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있었어요. 가족들은 하루하루 무너져 갔고 의료진 역시 긴박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그러나 절박한 순간 기적처럼 뇌사 기증자가 나타나며 수술이 진행될 수 있었어요.”
수술은 끝났지만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됐다. 아이는 두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서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넘겨야 했다. 감염과 합병증이 반복됐고 의료진 역시 하루하루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어떤 의학적 기준으로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결국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하나님께 정말 많이 매달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 주셨고 아이는 살아났습니다.”
지금 그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해 외래 진료를 받으러 병원을 찾고 있다. 인경 교수는 “아이와 가족을 다시 만날 때마다 생명을 살린다는 일이 단지 수술 하나의 성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된다”고 고백했다.
“한 아이가 살아난다는 것은 결국 한 가정의 시간이 다시 이어지는 일입니다. 당시 임신 중이셨던 어머니께서 둘째도 건강하게 출산하셨고 지금은 가족 모두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 마다 이것은 제 힘만으로 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고백하게 됩니다.”

생명의 주인은 결국 하나님
인경 교수는 “소아외과 영역이야말로 인간의 능력과 생명의 신비 앞에 가장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자리”라고 말한다. 같은 병명을 가진 아이들이라도 모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같은 수술이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진단명을 갖고 있어도 실제 아이들의 상태와 과정은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의사 역시 매번 새로운 마음으로 아이를 마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현장은 언제나 해답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인경 교수는 말한다. 어떤 아이들은 회복되지만 어떤 아이들은 끝내 회복하지 못하기도 한다. 의사로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받아들여야 하는 죽음의 순간 앞에서 그는 자주 무력함과 혼란을 경험한다고 털어놓았다.
“아이들의 병은 대부분 아이들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작은 아이가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특히 어떤 아이를 너무 일찍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것 같은 순간에는 저 역시 혼란스럽습니다. 솔직히 그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인경 교수는 결국 그 질문 앞에서 다시 붙드는 것은 ‘믿음’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한 생명에게 허락하신 시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시는 뜻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이 자리에 설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저를 붙들어 줍니다.”
크리스천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
인경 교수는 자신이 소아외과의 길을 걷게 된 것도 결국 하나님의 이끄심이었다고 고백했다.
“저는 학교에서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긴 했지만 압도적으로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의대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는 천재 같은 친구들도 있고 저처럼 그저 성실하게 해 나가며 들어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길을, 그리고 소아외과라는 분야를 선택하게 된 것은 제 스스로의 결정이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이끄신 자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경 교수는 소아외과 진료 현장에서 느끼는 생명의 고유함이 신앙 안에서 바라보는 인간 존재와도 닮아 있다고 말한다.
“소아외과, 특히 선천성 기형 분야는 같은 진단명을 가진 아이들이라도 그 안의 모습과 과정이 모두 다릅니다. 저는 그것이 마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과 같다고 느낍니다. 우리 크리스천들도 하나님께서 모두 다 다른 모습으로 지으셨고, 그 다양한 모습을 통해 각자에게 맡기신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인경 교수는 크리스천 의사로 살아간다는 의미에 대해서도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인경 교수는 “결국 크리스천 의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제 모습대로, 맡기신 자리에서 열매 맺으며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분명 저보다 연구를 더 잘하는 분도, 수술을 더 잘하는 분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자리와 역할이 있다는 믿음, 그것이 크리스천 의사로 살아가는 제게 가장 큰 평안이자 책임”이라고 했다.
오랜 시간 어린 환자들과 부모들을 마주하며 인경 교수는 인간의 사랑과 눈물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가고 있다. 아이가 아프면 부모 역시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고 자녀를 위해 자신의 삶 전체를 내어놓는 부모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 역시 깊은 질문 앞에 서게 된다고 한다.
“중환자실 앞 의자에서 밤을 새우는 부모들, 수술 결과를 기다리며 작은 말 한마디에도 눈물을 쏟는 가족들, 아이 대신 아프고 싶다고 말하는 부모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인간이 가진 사랑의 깊이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자녀를 향한 부모의 간절함을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마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생각하게 돼요. 부모님들을 보면 너무 존경스럽고 그래서 의사로서 더 많이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소아 간이식은 수술 아닌 평생의 동행
실제 소아 간이식 현실은 여전히 쉽지 않다. 국내 성인 간이식은 연간 1천 500건 안팎 시행되지만 소아 간이식은 매년 40~50건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어린이 환자에게 적합한 뇌사 기증자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어린이 환자는 질환의 진행 속도가 빠르고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는 경우가 많아 이식 여부와 시기를 결정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의료진은 의미 있는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인경 교수에 따르면 세브란스병원이 2023년 8월 이후 시행한 18세 이하 소아 간이식 37례 가운데 36례가 현재 생존해 97.3%의 생존율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는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고 여겨졌던 질환들도 이제는 장기 생존과 삶의 질까지 함께 바라보는 시대로 바뀌고 있습니다. 간이식은 단순히 수술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성장과 삶 전체를 함께 돌보는 과정 입니다.”
또한 “이식이 잘 되면 황달과 복수,출혈 위험이 줄고 성장과 학교생활 등 일상 기능도 상당 부분 회복된다”며 “다만 면역억제제 복용과 정기적인 추적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평생 함께 관리해 가야 하는 질환으로 이해 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소아 간이식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는 순간 가족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혼란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픈 아이 함께 품는 공동체 되어야
인경 교수는 오늘날 소아의료 위기의 본질은 단순히 의사 수 부족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아이들의 치료가 개인과 가정의 희생 위에만 맡겨져 있는 사회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응급실 뺑뺑이’라는 말이 반복되는 현실은 결국 소아 의료진의 숫자 부족이 아니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명감만으로 버티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소수의 헌신에 기대어 있습니다. 어린이 치료는 결코 자본주의 논리만으로 유지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한 사회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그 사회의 미래를 보여 주는 가장 정직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경 교수는 저출산 시대 속에서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전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교회가 귀한 역할을 감당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회와 국가가 미처 채우지 못하는 빈자리를 신앙 공동체가 채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노인들을 위한 돌봄도 분명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을 만한 나라, 아이를 키울 만한 나라가 되는 것, 그리고 그 아이들이 주일학교에서 신앙으로 양육되어 건강하게 성장해 가는 것, 그 믿음의 전통이 다음세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가장 귀한 역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어 인경 교수는 한 가정의 짐을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문화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아이의 질병과 한 가정의 위기를 그 가족만 짊어지게 두지 않고 신앙 공동체가 함께 그 무게를 나누는 것, 그런 공동체 의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한 아픈 아이를 함께 품는 데에도 한 신앙 공동체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 사랑이 회복될 때 우리 사회와 다음세대를 향한 가장 깊은 치유가 시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인경 교수는 환자가족들에게 가장 자주 전하는 말을 전했다.
“우리는 간도 심장도 이식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정신과 영혼은 대신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서게 되기에 결과를 다 붙들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맡기며 오늘 최선을 다해 걸어가는 것이 중요 합니다.”
작은 생명 곁을 지키는 인경 교수의 시간은 결국 생명을 향한 믿음의 자리 이기도 했다.
/박충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