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 세상에 소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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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핵심의 두 바퀴가 있다. 성탄과 부활이다. 성탄절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복된 날이라면,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신 영광의 날이다. 기독교 외에 다른 종교도 성탄이 있다. 그러나 없는 것이 있다. 부활이다. 생일은 있지만 부활이 없다. 부활은 오직 기독교에만 있다. 부활은 무엇인가? 죽었다 다시 산 것이다. 그러면 죽었다 산 것은 모든 부활인가? 아니다. 부활은 살았다가 다시 죽는 것이 아니다. 다시 죽지 않는 것이다. 영원히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생명은 부활이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가 없다. 교회도 없다. 구원도 없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일 새벽에 두 마리아가 다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다. 이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간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러 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몸에 향료를 부으려고 찾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 지진이 났고 천사가 무덤을 막았던 큰 돌을 굴려 치웠다. 이 광경을 본 경비병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기절을 했고 여자들도 물론 크게 두려워했다. 천사들은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키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며 빈 무덤을 보여주셨다. 그리고는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알리고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갈 것을 전하라고 하셨다. 천사의 말을 듣고 여자들은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두려움과 큰 기쁨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갔다. 바로 이때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달려가는 여자들 앞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빌라도 총독에게 나타나시지 않았다. 헤롯 왕도 아니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들도 아니다. 성전 꼭대기나 높은 산 위에 나타나시지 않았다. 새벽, 아직 어두울 때 한적한 산비탈 길을 울며 뛰어 내려가는 마리아와 여인들에게 나타나셨다.

마리아는 누군가? 우는 여인이다. 절망 중에 빠진 여인이다. 소망을 잃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픈 여인이다. 아무런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다. 당시 법정의 증인도 될 수 없고 사람들 숫자에도 들지 못하는 버림받은 존재이다. 마리아는 누군가? 예수님이 잡히실 때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지만, 예수님의 곁을 끝까지 지킨 여인이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이라도 부으려는 여인이다. 예수님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보려는 여인이다. 자신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우는 여인이다. 새벽의 어두움도, 무거운 돌문도, 무서운 로마 군인들도 이들의 발걸음을 막지 못하는 믿음의 여인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바로 이런 여인들에게 나타나셨다. 이런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평안하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늘의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 우리와 항상 함께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둘째는 내가 부활함으로 죽음의 권세를 이기었으니 너희도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이길 줄 믿고 평안하라. 두려워하지 마라는 것이다. 셋째는 부활의 권능을 힘입고 예수님의 부활을 힘차게 전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 외에 다른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켄 가이어(Ken Gire)가 쓴 기도를 들어 보자. “​부활하신 주님, ​모든 것이 너무나 뿌옇게 보일 때, ​당신조차도 뿌옇게 보일 때, ​그리고 당신의 목소리가 이상하고 낯설게 들릴 때, ​제가 눈물을 씻고 당신이 제 곁에 서 계신다는 것을 보게 해 주시옵소서. 제가 왜 우는지를 알고 싶어 하시고, ​제 상처가 무엇인지도 알고 싶어 하시고, ​제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보게 해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부활의 주님, ​거기에 계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결코 저를 떠나시거나 버리시지 않고 ​제 삶의 가장 어둡고 추운 때에도 함께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오늘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처지에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육체적, 가정적, 경제적, 사회적 눈물이 있다. 아픔이 있다. 슬픔이 있다. 바로 이럴 때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셨다. 드디어 갈까말까 하던 겨울이 가고 올까말까 망설이던 봄이 왔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빛을 이기는 어두움도, 진리를 이기는 거짓도, 사랑을 이기는 증오도 없다. 부활을 이기는 질병도, 고통도, 죽음도 없다. 부활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위로하신다. “평안하라.” “두려워하지 마라”. 소망이 없지 않다, 소망이 있다. 예수님이 시련을 이기는 백신이다. 예수만이 소망이다.

이화영 목사
<금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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