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님, 빨리 오세요, 제발 빨리 오세요. 오빠 나사로가 많이 아파요.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오빠는 살 수가 없어요.” 결국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 나사로가 죽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을 기다렸지만 오시지 않자, 두 자매는 절규합니다. “도대체 왜? 도대체 왜?” 어느새 나사로를 장사지낸 지도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예수님이 이곳으로 오고 계시다고 말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께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울기 시작했어요. “예수님, 만약 당신이 여기 계셨다면, 제 오빠를 고치셨을 것이고 그는 지금 살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나흘이나 늦으셨군요. 이제 모든 희망이 사라졌어요. 주님, 이해가 되지 않아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와 같지 않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거든요. 그리고 놀랍게도 예수님은 우리가 보기에는 나흘이나 늦게 오셨지만 사실은 정확한 시간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빠의 무덤을 보여 주렴!” 마르다가 말합니다. “주님은 모르십니다. 제 오빠는 무덤에 묻힌 지 나흘이나 되었어요.” 이윽고 무덤 입구에 놓인 돌이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그가 살아났다! 나사로가 살아났어!”
여러분 중에 혹시 두려움과 싸우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중에 예수님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지만 그러나 아무응답도 없으신 그런 분이 계신가요? 친구여, 낙담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분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신 같은 예수님이시거든요. 그 분이 이 땅에 곧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무덤의 돌을 옮기시고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분이 나흘이나 늦게 오셔서 우리의 모든 소망은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왜 이렇게 늦으시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의 방법과 같지 않아요. 그 분은 하나님이시거든요. 그리고 놀랍게도 예수님은 우리가 보기에는 나흘이나 늦게 오셨지만 사실은 정확한 시간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그분은 정확한 시간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은 서울에 사시는 某권사님이 보내주신 ‘나사로 사건’의 동영상인데 노랫말의 우리말 자막(字幕)을 받아 적고 부분적으로 보완하여 “신앙산책”에 올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영상 속에 나오는 솔로 여가수의 감정표현이 매우 진지합니다. 나사로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는 대목에서 청중들의 얼굴에는 희비(喜悲)가 교차됩니다. 나사로가 다시 살아나는 시점에서 찬양이 끝나는 순간, 화면 속의 청중들은 감격한 표정으로 모두 일어서서 양손을 높이 쳐들고 “아멘!”으로 화답하는 장면이 우리 모두를 은혜와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우리에게 보여주신 가장 놀랍고 감동적인 사건은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제외하면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극히 사랑하셨던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가 앓고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병과 죽음이라는 재난’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는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나사로가 죽음을 극복할 것을 아시면서도 나사로의 죽음을 비통히 여기시고 우셨습니다. 이 눈물은 인간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고 진정한 애도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실 정도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왜 예수께서 우셨습니까? 사랑하는 나사로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의 눈물이 중요합니까? 그 눈물은 하나님의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셨다는 것은 실로 특별한 일입니다. 이 말은 인간이 특별한 존재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나사로를 가리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 안에서 ‘잠’과 ‘죽음’은 같은 맥락(脈絡)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시간 속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함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우리에게 “영생과 참 생명의 실체”를 보여주신 것이라 하겠습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