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보이스 타운 < 3>
난지도 삼동 소년시 ⑥
‘소년시’ 바른 소식·지식 전달에 최선
테일러 장군 일행, 질서정연함에 감탄
전기없는 소년시민에 해결길 약속
희생·봉사…그리스도 사랑 품으려 애써
민주주의를 원칙으로 하여 임시 시장 조동근 군을 중심으로 한 200명 시민들의 열성으로 소년시는 날로 발전하여 오전은 학생으로 학교에서, 오후는 시민으로 각 직장에서, 저녁은 아늑한 가정에서 질서있고 자유스러운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자라나고 있는 소년시의 문화 발전의 한 모퉁이를 맡고 있는 본 소년신문사에서는 시민들의 요구의 만분의 일이라도 채울 수 있을까 하여 빠르고 옳은 소식을 전달하고, 진정한 여론을 수집하여 보다 넓은 지식의 전달에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이 주간 <소년시>를 내어놓게 되는 바입니다. 시민 여러분의 도움과 애독으로만이 본지는 발전할 수 있으며 여러분의 후원을 진심으로 바라 마지않습니다.
<소년시> 2면에 실린 기사 가운데 톱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테일러 장군 방문, 시민들의 대환영 중에’라는 제목의 것인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4대의 헬리콥터와 함께 미 제8군 사령관 테일러 장군이 7명의 고급장교 아저씨를 대동하고 소년시 비행장에 내리시고, 소년시의 생활을 낱낱이 시찰하고 가신 바 있다.
즉, 지난 10월 17일 미리 전보를 받은 중앙 YMCA 총무 현동완 총무님은 소년시 비행장에 전 시민과 함께 급행하였다. 이날 하늘에서 내리는 테일러 장군 일행은 시민들의 성대한 환영 가운데 무사히 착륙하고 총무님과의 기쁨의 악수를 교환하여 소년시 안에 있는 여러 기관을 낱낱이 시찰했다.
소년시 건설에 막대한 금품으로 애쓰신 미 제5 독립연대 사령관 월러 대령에게 치사하였으며, 소년시장 조동근 군의 수고를 위로하시고, 겨우 3개월밖에 안 된 각 기관의 활동이 질서정연함을 감탄하시고, 전기 없이 지내는 소년시민에게 곧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겠다는 고마운 말씀을 남기고 약 30분 동안의 시찰을 마치시고 가셨다.
광은 형이 이룩해 놓은 난지도의 이 보이스 타운에 옮겨 들어갈 무렵, 내조자인 김유선 여사에게는 하나의 조그마한 추억이 있다.
난지도에 들어가기 직전(환도 직후) 내가 YMCA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옛날의 YMCA회관 2층에서 살았다.
어느 날 밤 도둑이 2층 창문으로 넘어 들어와 내 양산과 그 밖의 몇 가지를 훔쳐 가지고 달아났다. 그런데 며칠 뒤 동대문 시장에 나갔더니 바로 그 양산이 어느 가게에 매달려 있어서 돈을 주고 도로 사왔다. (그때만 해도 동대문 시장은 과히 복잡하지 않았다)
난지도에 들어가던 8월에 내가 그 양산을 쓰고 들어가게 되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밤 J라는 소년(소년교도소에서 넘어온 소년)이 도망치고 말았다.
친구들을 통해 그 원인을 조사해 보았더니, 자기가 바로 그 양산을 훔쳐서 팔아먹은 범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모시고 사는 형님 집에 들어갔던 일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어서 계속 고민하다가 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날 밤 여러 소년들을 동원시켜서 그 소년의 행방을 찾아내어 도로 데려왔던 일이 있다.
광은 형의 생애에서 가장 열정에 찼던 난지도의 삼동 소년시 시절, 그것은 청빈(淸貧)을 모토로 한 성 프랜시스의 재판이다. 그는 자기를 뒤에 숨기고 희생과 봉사로써 고아들을 돌보며 그리스도가 품었던 사랑을 품어 보려 애쓰고 몸부림친 것이다.
그러기에 난지도 시절의 황광은 형을 묘사함에 있어, 필자는 조그마한 과장이나 왜곡된 대목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좀더 늘여서 표현하고 싶은 감동스러운 대목이 있어도 그것은 회피되어야 하고, 냉정한 객관적 위치에서 서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당시의 증인들의 증언을 듣는 데서 끝나야 하리라고 믿는다.
우선 어느 잡지에 실린 기사부터 인용한다. 이 기사는 삼동시의 소년 시장을 지낸 바 있는 김용호 씨가 스크랩해 소장하고 있는데, 어디서 스크랩했는지 출전이 밝혀져 있지 않다. 기사는 앙케트에 대한 대답 형식으로 되어 있다.
[문] 서울 부근에 보이스 타운(삼동 소년시)이 있다고 합니다. 그 소년시에 대해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 수색(水色) 남방 2킬로미터 지점인 한강 한복판에 있는 난지도에 ‘삼동 소년시’가 있습니다.
삼동 소년시는 1952년 8월 12일에 100여 명의 시민을 포섭하고 정식 발족했으나, 사실은 이보다 3년 전 서울 기독교청년회(YMCA), 총무 현동완 씨와 소년부 황광은 씨의 심혈을 기울인 지도로 YMCA 한 칸 방에서 사업 전개를 했고, 기독교청년회 소유지인 난지도 황무지를 개척하던 중 6‧25동란으로 만부득이 일시 중단했다가, 뿔뿔이 헤어졌던 옛 시민들이 모여들기를 기다려서 1953년 3월 기공해 4개월 만에 20채의 주택, 학교, 보건 시설 등을 준공했는데, 미 제5 전투연대의 거액의 기부와 현동완, 황광은 양 선생의 진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더욱 삼동 소년시는 현재 시민 120명의 총선거로 선출된 김용호 시장 밑에 8국(생활, 농림, 상공, 문화, 보건, 재정, 교체, 인사 등의 제국)이 있어서 시장을 보좌하고 있으며, 민주 행정을 철저히 하기 위하여 시의회(인구 15명 꼴에서 한 사람씩, 임기 6개월)가 있어서 법을 세우고 행정을 감시하고 있다 합니다.
한편 소년군 사령부가 있고 시민은 병역의 의무가 있어서, 누구나 소집을 받으면 훈련을 받고는 ‘조사대(일반 사회의 경찰)’, ‘경비대(일반 사회의 군대)’에 편입되어 치안과 난지도 전역을 경호한다고 합니다.
소년시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어서, 시민은 누구나 오전중은 학업에 전심하고 오후는 각자 맡은 임무 수행을 하는데, 자급자족을 목표로 각자 하루 3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여 심신과 기술 연마를 하며, 저녁은 12명씩으로 구성된 각 주택에서 자유롭게 학습, 오락, 휴식을 한다고 합니다.
노동에 대한 대가는 ‘소년은행’ 발행의 화폐로 지불되고 이것으로 모든 면에서 소통되고 있으며, 소년, 병원, 목욕탕 등의 보건 시설을 비롯하여 양복점, 농장, 목장, 상점, 공작소, 우편국, 호텔, 도서관, 연극단, 합창단, 소년 YMCA 그리고 신문사도 있다고 합니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