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함께하는 삶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며 아름답고 선한 마음으로 평안의 삶을 이루어 가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善)과 악(惡)이 공존하는 세상을 살아가며 때로는 선한 사람도 되고 악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마음먹기에 따라 수시로 바뀔 수도 있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가운데 악은 언제나 우리의 약한 마음을 흔들며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TV나 신문을 통해 너무 험한 뉴스, 끔찍한 뉴스를 볼 때면 세상이 어찌 이렇게 험악해져 가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이 든다. 평범해 보였던 사람이 어느 순간 끔찍한 악마로 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세상이 날로 악해지고 방법도 다양해지는 험한 모습들이 과연 복잡한 사회적 현상으로 치부해야만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과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데 기인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결과인지, 함께 잘살아 보겠다는 비전이나 노력보다는 혼자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에만 몰두하는 모습만 보인다. 우리 사회는 지도자들이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잘못을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모습을 도무지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일반인들조차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헷갈리며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고 따라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구분이 안 되는 것 같다. 세상은 점점 이기적이고 양보나 배려, 그리고 보다 높게 멀리 내다봐야 한다는 교훈을 잊고 사는 것 같다. 내가 잘못했소 하며 사죄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더 큰 감동을 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생각지 않는 것 같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옛말처럼 지도자들이 스스로 본을 보여 준다면, 많은 사람에게 “세상은 저렇게 사는 것이구나” 하며 따라 할 수 있는 모습조차 보기 힘들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신앙 양심을 통해 일깨우시며 말씀대로 살아가라고 명하시지만, 우리는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 자아와 교만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막고, 자신을 앞세우기에 바쁜 모습이다. 내가 하는 잘못된 말과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고, 실망과 좌절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다. 선과 악의 차이는 백지장 두께 차이라고 한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자신의 교만과 오만한 말들로 인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지 못하는 사이에 악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20세기 저명한 정치사상가 한나 이렌트(1906~1975 미국컬럼비아 대학교 교수, 철학박사)는 “악은 평범하다 거대한 악의 뿌리에는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게으름과 멍청함이 있을 뿐이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평소 인격적인 사람으로 평을 들었어도, 어느 순간 교만과 변심으로 원초적인 악이나 숨겨졌던 비인간적인 면이 되살아나고, 더구나 노령화로 인해 뇌의 퇴행성 변화와 심리, 성격, 인지기능에 이상이 생겨, 본능과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되므로, 쉽게 화를 내거나 분노하고 매사에 융통성이 떨어지면서 독선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구조와 시대적 가치 기준, 그리고 사상적 성향에 따른 시각의 차이로 판단기준이 다양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만의 이기주의에 빠지거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나 용서 없는 냉정함이 경우에는 사회악의 씨가 되고 나쁜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는 것이다.
윤태혁 장로 (전국장로성가합창단협회 전회장, 상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