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회는 안암동에 70년째 자리한 지역교회입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지역의 이웃을 위한 사랑의 쌀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노회가 속한 철원 동송지역의 오대쌀을 성도님들의 정성을 담아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주민센터 복지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 취약계층에서 좋아하는 품목은 쌀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게 웬일입니까? 이미 쌀을 교환하는 쿠폰을 지급 받았기 때문에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란 것은 이 분들이 원하는 것이 라면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교회가 어려운 이웃에게 라면을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때 저는 이솝 우화에서 여우와 학이 각각 접시와 호리병에 음식을 대접했던 것이 떠올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웃 사랑이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이웃이 진정 원하는 것을 헤아리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를 계기로 단지 선을 행함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진정 이웃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이후 주민센터 복지담당자를 통해 어려운 분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기 시작했고, 성도님들의 밀알헌금을 모아 한 겨울에 원하는 전기요와 이불 세트를 전달했습니다. 자연스레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구 사회복지협의체)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고 아울러 현재는 동 주민자치회에도 참여하면서 동네의 현안과 필요를 파악하며 지역 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 배우고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 동네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동네를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역 모임과 활동에 참여하면서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찾아가는 현장 구청장실, 플리마켓, 마을 청소, 찾아가는 상담소 등을 통해 마을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주민의 수와 분포, 삶의 형편, 주거형태의 70%가 넘는 1인 가구수, 단절된 채 고립된 청년들, 발전되지 않는 재래식 주택가(아파트 비율이 28% 이하)로 인한 정체된 분위기 등.
80대 새마을운동 어르신 세대에서부터 30대 직장청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위원들이 모여 지역 주민의 실생활에 대한 열띤 토론을 나누며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를 향한 깊은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사역하고 있는 동네에 대해 너무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무관심과 안일함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소명’의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당신의 주변에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들을 몇 명이나 꾸준히 알고 지내는지’를 질문합니다. 이 관계가 형성되어야만 이웃 사랑을 실현하며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는 통, 반장에서부터 구의회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양으로 지역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지역에 대한 관심과 섬김은 이웃 사랑의 실천이자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저는 현재 우리 동네를 배우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 살고 계시는 ‘우리 동네’를 얼만큼 알고 계신지요? 동네 사람들은 교회를 얼마나 가깝게 느끼는지요? 우리가 품어야할 자리는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 동네 사람들입니다.
유상진 목사
<영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