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 행복한 선택  박래창 장로의  인생 이야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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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 사업에서 성공으로 이끈 노력과 직관

패션 트렌드를 선도하는 안목과 전략

현장 경험 · 협력이 만든 성장의 기회

원단을 만져보고는 섬유질이 가공 공정에 따라 어떤 차이를 가지게 되는지를 바로 파악할 수 있어야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나가는 바람과도 같은 유행을 파악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흐름의 포인트를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내 스스로 확실하다는 감이 잡히면 이미 반은 성공한 셈이다.

출장에서 돌아오면 샘플로 구해온 의류들을 가지고 바로 생산 공장 거래처인 직물 회사, 방적 회사와 함께 분석에 들어간다.

국제복장학원 최경자 원장님을 찾아가 같이 분석을 하기도 했다. 최 원장님은 국내 1세대 패션 디자이너로 노라 노, 앙드레 김과 함께 3대 디자이너로 불린 분이다. 이 분이 1961년 세운 국제복장학원은 수많은 디자이너들을 양성한 대표적인 교육 기관이었다. 내가 이런 대단한 분과 어떻게 알고 지내게 되었을까? 그냥 무작정 찾아갔다. 그저 국내에서 패션 트렌드를 제일 잘 아는 분을 수소문한 뒤에 무작정 전화를 드렸다. 이러저러하게 정보를 수집해 왔는데 설명드리고 조언을 구해도 되겠느냐고 묻자 최 원장님은 “웰컴!”이라며 얼마든지 찾아오라고 하셨다. 최경자 원장님은 그때 이미 환갑을 훨씬 넘긴 연세였지만 40대인 나와 마치 동료처럼 스스럼없이 대화를 하셨다. 내가 출장 기간에 보고 온 것을 설명드리고, 수집해온 샘플들을 보여드리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해 주시곤 하셨다. 나중에 따님 되시는 신혜순 원장이 계신 EO도 찾아가 같이 이야기 나누곤 했는데 역시나 소탈하고 권위의식 없는 분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정리한 최신 패션 트렌드 정보를 바탕으로 한국의 생산기술 수준과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원단을 디자인하고 생산에 들어갔다. 그러면 우리 회사밖에 없는 신상품이 탄생한다. 당시 우리가 주로 만드는 원단은 봄‧여름 시즌의 여성‧남성‧아동 패션, 홈패션, 캐주얼 의류용이었다. 제때 유행을 타는 옷을 만들려면 원단은 적어도 1년 반에서 2년은 앞서 기획하고 생산해야 했다. 이 분석과 예측이 잘되면 상품이 잘 팔리고, 안 그러면 재고로 남기 때문에 감각과 노력을 총동원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우리 원단으로 제품을 만든 의류 회사들의 판매율은 거의 70~80%에 달했다. 각 패션 브랜드의 치프(수석) 디자이너들이 우리 원단을 기다렸다 구매했다. 덕분에 삼성물산, 반도(엘지)패션, 코오롱, 제일모직 등 까다로운 대기업들에 성공적으로 납품해 매출이 크게 늘었다. 일반 대중용 상품으로 개발한 원단도 평화시장, 남대문시장, 지방 도매업자들에게 인기리에 대량으로 판매됐다.

이렇게 1990년대 중반까지 열심히 해외 출장을 다녔다. 일하다가 방향이 안 보인다 싶으면 훌쩍 비행기를 타고 떠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럽의 패션 거리를 헤매던 중 깨달음이 왔다. 내가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처음 섬유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는 이 일이 적성에 맞는지, 이 분야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신세계를 만난 심정으로 몰두했을 뿐이다. 게다가 나는 청소년 시절 막연하게 법관, 선생님, 신문기자,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어봤을 뿐, 단 한 번도 패션 사업을 할 만한 창의적, 예술적, 감성적 감각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이런 산업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너무도 내 적성에 맞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묻혀 있는 내 능력을 미리 보시고 적절히 쓰일 곳으로 나를 인도해주신 것이다.

여기서 내 능력이란 타고난 예술적 감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흔히 패션 감각과 같은 예술적 능력은 타고 나는 것, 혹은 어려서부터 남다른 경험을 많이 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키워야 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다만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다. 나처럼 필요에 의해서 뛰어들었어도, 열정을 가지고 일정 기간 동안 능동적으로, 집중적으로 파고들면 어느 순간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몰입의 순도가 높고 깊을수록 그 가능성은 더 커진다. 내게는 새로운 일을 만났을 때 즐겁게 몰입하고, 몰두하는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 능력은 사업에서 은퇴한 지금까지도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당시는 산업 환경과 여건도 좋았다. 한국 역사상 섬유‧원단‧패션 산업이 가장 왕성하게 성장하던 시기에 그 한가운데서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한국의 성장성을 보고 전 세계 섬유 생산의 신기술과 장비, 정보가 몰려들어올 때였다. 특히 우리 회사는 김교석 회장이 쌓아놓은 기업의 명성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실력있는 대기업, 연구원, 공장들 어디하고나 손잡고 신제품 개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불과 10년 정도 만에 이 분야에서 국내 탑클래스 기업이 되어 있었다. SK, 삼성, 대우의 초기 기업들도 그때는 모두 이 산업 분야에 주력하고 있었다. 이런 기업들이 해외 패션 브랜드와 기술 제휴를 할 때 내게 출장을 같이 가지고 요청해 오기도 했다. 대기업 직원들이나 소속 디자이너들은 실제 생산 기술과 공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같이 가서 초기 세팅을 도와주곤 했던 것이다. 삼성물산이 의류 개발 사업을 하던 초기에 프랑스 남성복 브랜드인 ‘맥그리거’와 제휴를 맺을 때도 그랬다. 담당 임원들과 같이 프랑스 맥그리거 본사와 생산 공장을 방문했을 때 현지 임직원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도 하고 토론도 할 기회를 가졌다. 이런 경험은 그들에게도 도움이 됐지만 우리 회사가 이후 신제품을 개발하고 납품할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큰 기여를 했다. 이렇게 경험으로 지식을 체득하는 것이 학교에 10여 년 다니면서 공부하고 학위 받는 것 못지않다는 것을 나는 사업 결과로 증명했다.

이렇게 몰두하고 즐기면서 40년간 섬유 사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주변에서는 나를 그 분야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으로 불러주고 있었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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