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갈등시대, 사순절은 어떻게 보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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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은 원래 세례 지원자들을 위한 준비단계로서 지켜져 왔다. 세례를 받기 원하는 이들은 참회의 수요일(Ash Wednesday)로부터 부활절까지의 40일이라는 기간(사실은 46일이지만 작은 부활절로 지켰던 6번의 주일은 제외)을 금식으로 상징되는 절제의 시간으로 보냈다. 이러한 교회 전통은 신앙의 영역마저 인스턴트 문화로 만들어가는 오늘의 우리에게 자못 충격으로 다가온다. 만약 오늘날 세례를 받으려면 40일간의 절제된 삶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요구한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에 응답할 것인가를 상상해본다. 값싼 은혜를 양산 해온 우리들의 미숙한 신앙이 이제는 신앙으로 다가오려는 이들마저 오염시킨 것 같아 주님께 민망한 마음이 커질 뿐이다. 

그런데 교회 역사를 보면 이러한 사순절 전통을 세례 지원자들만이 아니라 기존의 신앙인들도 지켰음을 알 수 있다. 이미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십자가의 수난을 명상하고 회개하며 사순절을 보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님께서 신앙인들에게 요구하시는 자기희생적 사랑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세례를 이미 받았다고 우리의 삶이 온전히 주님 원하시는 삶으로 온전히 변화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새삼 깨우쳐 준다.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배운 바를 요약한다면, 사순절은 우리 신앙인들이 지금까지 이 세상 안에서 오염된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정제하는 기간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금욕적인 절제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순절 동안의 절제하는 삶은 죄로 얼룩진 이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궁극적 희망을 꿈꾸게 한다. 우리가 그토록 치열하게 기다리는 희망은 곧 부활의 승리이다. 부활은 현재 이 세상을 뒤덮고 있으며,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는 ‘갈등과 죽음의 문화’를 극복하는 궁극적 승리를 뜻한다.

갈등의 시대와 사순절: 생각과 말과 행위의 절제로부터

우리는 오늘 전례 없는 갈등의 시대 속에서 사순절을 보내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시대 속에서 사순절은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위의 절제를 요청한다. 내 생각을 말하고, 주장하고,  동하기에 앞서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먼저 들음이 절제의 시작일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앞서야 할 것은 주님으로부터의 말씀을 듣기 위해 우리의 말과 생각을 절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절제는 인내를 필요로 한다. 인내와 절제는 그리스도인들의 덕을 세움에 전제가 되는 요소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내와 절제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그것을 넘어서 사회적 공동선을 창조하는 능력으로서의 사랑을 이 세상에 보여주고, 실천해야 한다. 사랑이 있어야 우리의 서로 다름이 파괴적 갈등으로 치닫지 않고 ‘합력하여 선을 이룸’으로 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등으로 얼룩진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그 몸을 바치시기까지 사랑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시어 부활을 허락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사이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가 있다. 

2025년, 갈등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절제와 인내와 희생, 즉 자기 부인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다시 태어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신앙인다운 신앙인, 세상보다는 오직 예수님을 더욱 닮아가려는 성숙한 신앙인들의 회개와 각성으로써 다시 한번 주님 안에서 모두 함께 “대~한 민국”을 노래하는 희망의 나라를 기도한다!   

임성빈 목사

<장신대 명예 교수,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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