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
이 말씀은 외적인 신분이나 전통, 종교적 배경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강력한 경고이다. 요한은 종교 지도자들의 허울뿐인 신앙을 꿰뚫어 보았고, 그들이 회개의 열매 없이 외형만 유지하고 있는 모습을 단호히 책망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10절,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는 말씀은 더욱 충격적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뿌리를 보신다. 잎이 무성하고 줄기가 튼튼해 보여도 열매가 없으면 도끼를 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외적인 형식, 전통, 직분, 평판이 아니라 우리 안에 맺히는 진정한 회개와 순종, 성령의 열매가 하나님의 판단 기준이다.
우리가 아무리 멋지게 보이는 신앙의 가지를 내고 잎사귀를 달고 있어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열매가 없다면 그 생명은 지속되지 못한다. 반대로 외적으로는 초라하고 병든 나무처럼 보여도, 그 속에 진실한 회개와 사랑의 열매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나무를 귀히 여기신다.
부족한 종이 섬기는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리에 서 있다. 산과 들, 하늘빛과 바람이 어우러지는 공간, 중정과 넓은 정원,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 그리고 그늘이 풍성한 가지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선물이다. 이곳을 거닐기만 해도 마음이 맑아지는 이 정원에는 해마다 가지치기와 솎아주기가 필요하다.
며칠 전, 교회 행사를 앞두고 정원의 여러 나무들을 잘라냈다. 그 나무 하나하나마다 누군가의 땀과 기억, 애정이 담겨 있었다. 어떤 나무는 오랜 시간 정성스럽게 키워 옮겨온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지치기를 마친 정원은 훨씬 더 단정하고 본래의 아름다움을 더욱 온전히 드러냈다.
그런데 다음 날, 잘려나간 그루터기 앞에 서자 마음이 뭉클했다. ‘아깝다’는 생각, ‘그 나무도 한자리를 지켜온 존재였는데’ 하는 마음이 가슴을 저미듯 스쳤다. 그러나 곧 깨달았다. 솎아낸 그 자리에 빛이 들어왔고 공기가 순환되었고 남은 나무들은 더 깊이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그 순간, 장로님 한 분이 제게 물으셨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느 나무를 자를까요?” 우리는 입구에서 시야를 가리는 나무, 가지가 말라버린 나무를 기준으로 골랐다. 그 판단은 단순한 미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정원의 건강을 위한 결정이었다.
이 모습이 마치 하나님의 도끼와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는 스스로 자라거나, 베어지는 것을 결정하지 못한다. 모든 주권은 주인의 손에 있다. 하나님은 생명의 지속 여부, 존재의 의미, 사명의 성취 여부를 그분의 지혜로 판단하시고 결정하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분 앞에 겸손히 순종하며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일은 잘려나간 그 자리에서 새로운 빛이 들어온다는 사실이다. 가려졌던 시야가 트이고 정원 전체의 생명의 흐름이 새로워졌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가지치기의 은혜다. 때론 내 삶의 어떤 부분이 아프게 잘려나가고, 관계가 끊어지고, 익숙한 자리가 무너지는 아픔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자리에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시고 더 깊은 회복을 계획하신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 그루의 나무로 비추어 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나의 뿌리는 어디에 박혀 있는가? 혹시 겉모습은 그럴 듯하지만, 내면은 말라가고 있지는 않은가?
성경은 열매를 통해 믿음을 증명하라고 한다.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 이것이 성령의 열매요, 하나님이 찾으시는 거룩한 증거다.
우리 마음의 뜰에도 자신도 모르게 자라나는 죄의 가지들이 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 미움, 탐욕, 비교, 원망… 이익도 없고 열매도 없는 가지들이 나와 이웃을 찌르고, 하늘의 햇살을 가리우고 있다. 하나님은 이 가지들을 보시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경고 속에서도 하나님의 긍휼을 본다. 도끼가 놓였지만 아직 내려치시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기다리시며 열매 맺기를 바라신다. 지금은 은혜의 때요, 기회의 시간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주님의 손에 들린 나무가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비록 잘려나가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그 손 안에 있다면, 우리는 다시 자라고 더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나무의 존재는 뿌리와 열매로 증명된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다. 주님 손에 붙들린 삶, 열매 맺는 삶, 그 믿음으로 오늘도 굳건히 서 계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이규정 목사
<동대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