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의 문학산책] 시로 확인해가는 영생의 길 (下) 방랑과 참회의 서사(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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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시인이 <문장>지에 추천을 받은 것은 1940년 9월호였다.

정지용의 추천사, 그후 지훈과 주고받은 시화(詩話)는 문단 이면사에 회자되는 일화이기도 하다. 환도후 제자 H양과 제주도로 사랑의 도피행각, 아내 유익순 권사의 상식을 넘는 아가페 다운 남편과 H양에의 용서의 일화 등이 세간의 화제를 유발해 왔다. 정지용(鄭芝溶)은 목월의 시를 높이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추천사를 썼다.

<북에는 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소월이 툭툭 불거지는 삭주귀성조(朔州龜城調)는 지금 읽어도 좋더니 목월이 못지않아 아기자기 섬세한 맛이 좋아. 민요풍에서 시에 발전하기까지 목월의 고심이 더 크다. 소월이 천재적이요, 독창적이었던 것이 신경 감각 묘사까지 미치기에는 너무나 ‘민요’에 시종하고 말았더니 목월이 요적(謠的) 뎃상 연습에서 시까지의 콤포지션에는 요(謠)가 머뭇거리고 있다. 요적 수사(修辭)를 충분히 정리하고 나면 목월의 시가 바로 한국시이다.>              정지용, <문장> (1940. 9)

효자동

숨어서 한철을 효자동에서/살았다. 종점 근처의 쓸쓸한/하숙집.//이른 아침에 일어나/꾀꼬리 울음을 듣기도 하고/간혹 성경을 읽기도 했다./마태복음 5장을, 고린도전서 13장을.//인왕산은 해 질 무렵이 좋았다./보랏빛 산외(山巍) 어둠에 갈앉고/램프에 불을 켜면/등피(燈皮)에 흐릿한 무리가 잡혔다.//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아아, 그 말씀. 그 위로/그런 밤일수록 눈물은 베개를 적시고, 한밤중에 줄기찬 비가 왔다.//이제 두 번 생각하지 않으리라./효자동을 밤비를 그 기도를// 아아 강물 같은 그 많은 눈물이 마른 하상(河床)에/달빛이 어리고/서글픈 평안(平安)이/끝없다.  

‘효자동’은 제주도 도피생활을 마치고 효자동 자택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서 하숙생활 할 때의 작품이다. 참회의 아가서(雅歌書)가 된 것이다.

       

이별의 노래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바람은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박목월 시인의 자제분이신 박동규 교수는 최근 아버지의 습작과 그 퇴고광이 고대로 담긴 친필 창작노트 80권을 공개했다. 이 중 미공개된 166편을 골라 발표한 것이다. 그 중 ‘님’을 박 교수의 양해를 받아 게재한다.

나는 그것이/무엇인지 모른다./잠자는 동안에/벼개를 적시는 눈물을.//   나는 그것이/무엇인지 모른다./창에 비끼는/한밤중 달빛을.//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가랑잎 숲속에/빗발 소리를.//   사람을 사모하는/그 안타까움을./깨닫는 그날까지 나는 그것이/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박이도 장로

<현대교회•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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