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다함께 애국가 힘차게 불러 남북통일 속히 이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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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마다 자기 나라 국가(國歌)가 있다. 우리 나라 자랑스런 국가는 1945년 8월 15일 정부수립과 함께 지정된 오늘의 애국가이다. 세계 체육행사 때마다 금메달을 딴 우리 선수가 일등 단상에 우뚝 설 때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 노래 듣는 그 순간 우리는 한글겨레로서 가슴에 뭉클하게 기쁨이 샘솟지 않던가. 우리 애국가는 1955년 주한 미대사관에서 애국가 작사자를 알려달라 해 당시 문교부에서 작사자 안창호, 작곡자 안익태로 통보하려다가 이 사실을 언론에 먼저 알렸다.

제일 먼저 윤치호 가문에서 이미 별세한 윤치호작이라 주장하며 반대를 했다.

그 후 정부가 공식적으로 애국가 작사자를 조사했으나 안창호 윤치호 최병헌 김인식 민영환 다섯 인사의 애국가 작사자 관련 후보로 발표하고 정부의 공식 결론은 아직도 작자미상이다.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흥사단에서 15년간 애국가 작사자 연구한 결과는 도산의 작사 근거가 확실했다.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정부는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로 공식 발표해야 할 것이다. 애국가는 순국애국자가 작사했다. 결코 패배주의에 젖어살던 일제 친일행위자는 애국가 작사자가 될 수 없다. 도산 안창호가 1907년 3월 초 선천예배당에서 찬미가 소릴 듣고 영감을 얻어 평양으로 올라가 이틀 금식기도 하고 4계절 배경으로 애국가를 4절까지 지어 선천예배당에 보냈다. 이 올드랭 사인곡에 얹어 부르는 애국가는 선천예배당은 물론 선천일대 애창곡이 되었다. 을사늑약 정미칠조약 등으로 조국의 위기를 느껴 1907년 2월 귀국한 도산은 상동교회 전덕기 목사 등과 애국비밀단체 신민회를 조직하고 먼저 신민회 회원들이 애국가를 부르게 했다. 

도산은 자신이 설립한 평양 대성중학교 학생들에게 애국가를 부르게 해 애국사상을 높이 북돋아 주었다. 미국 멕시코 상해 등의 교포나 흥사단 단우들에게 애국가를 부르게 했다. 1930년대 초에 황사선 목사에게 애국가는 도산 안창호 작사 노래임을 듣고 감격적으로 애국심을 느낀 안익태는 1936년도에 애국가곡을 다시 작곡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선수 손기정 남승룡에게 애국가를 응원가로 불러 주어 손기정 1등 남승룡 삼등으로 승리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때 나라 잃은 비극 속에 일장기를 슬프게도 빛내 주었다. 도산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는 조회 때마다 애국가를 우렁차게 선두에 서서 불렀다. 미국 록키산맥 등산 중에도 전 서울대 총장 장리욱 박사와 함께 불렀다. 도산은 안필립을 비롯 3남 2녀에게도 애국가를 잘 부르게 했다. 애국가 연구가 깊은 이명화 박사도 도산의 애국가 부르기는 누구보다 앞장 선 애국자라 했다. 백범 김구 선생과 장준하 선생도 1945년 11월 23일 광복된 조국에 오는 비행기 안에서 목메이게 감격의 애국가를 불렀다. 일제시대 금지곡이 되어 있었으나 해외 우리교포나 애국지사들이 불렀던 애국가를 광복된 대한민국 조국에서 언제 어디서나 당당히 우렁차게 불러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 행사는 애국가 4절까지 부르고 있으나 민간 사회단체에서 시간 관계상 1절만 부른다거나 아예 생략하고 있다. 나고 자란 자기 나라사랑의 노래를 국민의례 때 시간 없다고 생략해서야 되겠는가. 시간 없다고 애국가 부르기는 생략해 놓고 식전 음악행사 축사 격려사 등으로 너절하게 시간을 끌고 있다. 4분이면 애국가 4절까지 다 부르고도 남는다. 국제펜한국본부 현대시인협회 짚신문학회 등의 문학단체에서 모범적으로 애국가를 생략없이 잘 부르고 있다. 조국광복 80주년을 맞으면서 정몽주 성삼문 순국정신도 담긴 도산 안창호 순국애국지사가 지은 우리 애국가는 온 국민이 다함께 우렁차게 불러서 우리의 꿈에도 소원인 남북 조국통일을 속히 이루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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