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연고전 고연전 체육행사로 빛나는 사학쌍벽 연‧고대

Google+ LinkedIn Katalk +

사학의 쌍벽 연․고대는 해마다 연고전 고연전 다섯 경기 체육행사를 벌여 양교의 우정을 다지며 학교 발전과 대한체육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나라 잃고 슬픔에 잠긴 일제시대 1924년 일본인 자녀교육을 위해 세운 경성제대를 지켜보면서 연희전문․ 보성전문 두 쌍벽의 사립학교가 대한의 앞날을 밝게 비춰주었다. 1925년 5월 30일 열린 제5회 전조선정구대회에서 연보전이 맞붙었다. 체육을 통해 대한체육의 미래를 보여주었다. 일제 압박이 심하던 1927년 제8회 전조선축구대회가 열려 준결승전에서 연보전(후에 연고전) 대결이 있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다음문제였다.

대한을 두 어깨에 짊어질 대한청년들의 늠름한 모습이 나라의 앞날을 밝게 했다.

당시 국민의 관심도 두 쌍벽 연희․보성전문의 연보전 경기가 큰 관심대상으로 미래의 희망이었다. 광복된 1945년 12월 연희전문 보성전문 양교 OB 축구, 농구 선수들이 연보전을 이루고 1946년에도 축구, 농구 경기를 이었다. 양교 이 OB선수들의 축구, 농구경기가 전통을 이어가며 1965년도에 연고전․고연전으로 힘찬 출발을 보였다.

경기 종목은 축구, 농구, 야구, 빙구, 럭비 5개 종목이다. 양교 체육행사 주관교가 연세대면 고연전, 고려대면 연고전으로 부르기로 했다. 해마다 푸른 가을 하늘빛이 아름다운 9월 어느 금토 양일간에 열띤 양교 응원 속에 용호상박의 경기가 펼쳐졌다. 초기 경기장은 서울운동장이었다. 연고전 축구경기가 마지막 관심 경기였다. 서울운동장에서 열렸다. 교통이 복잡하지 않던 초기에는 축구경기가 끝난 서울운동장에서 연대, 고대가 종로 을지로 길로 시가행진을 하며 서로 이겼다는 구호를 외쳤다. 광화문에서 해산하고 연․고대생이 한데 어울려 술잔을 나누며 우정을 돈독히 했다. 지금은 시가 행진은 없으나 양교 재학생들이 하늘 새짐승의 왕자 독수리 상징의 연세대 학교 근처 신촌골에서 지상의 짐승왕자 호랑이 상징의 고대 안암골에서 연고전․고연전 승리에 관계없이 술잔을 부딪쳐 가며 우정을 뜨겁게 쏟는다. 연고전 행사가 시작될 때 연세대 백낙준 총장, 고려대 유진오 총장이 나란히 앉아 양교 우정의 체육행사에 축하 격려사를 하셨다. 

고려대는 김상희 가수의 응원가로 힘을 북돋웠다. 양교의 교가를 불러줄 때 백낙준 작사, 박태준 작곡 ‘연세의 노래’ 가사가 너무 길어 고대생들이 소설이라 말했다. 연세대 학생들이 안암골 고양이라 약올리면 고대생들은 신촌골 참새로 응수해 왔다. 연세대 응원 구호에 ‘아카라카’가 있다. 뜻이 뭔지 알 수 없으나 내용은 상대 선수들 기를 꺾는 힘이 있다. 내용을 보면 “아카라카 칭 아카라카 쵸 아카라카 칭칭 쵸쵸쵸 후렴 라라라 씨스붐바 연세선수 라풀라 헤이 연세야!”로 1절이 되고, 2절로 “쾌지나” 3절로 “호프라”가 있다. 공통적으로 칭칭 쵸쵸쵸가 들어간다. 이 연세 특이한 응원가에 고대 응원단이 맞서보려 “대연세야!” 함성을 “대고려야!” 외쳤으나 연세응원소릴 당해내지 못했다. 

경기 중에 연세운동 선수가 다치면 세브란스병원 연세인들이 들것에 들고 나온다. 이 광경에 기죽던 고려대도 우석의대를 병합해 이제는 고대병원 들것이 고대 부상선수를 부축해 나간다. 연세대 설립연도는 1885년도로 올라가 올해 5월 141주년을 맞는다. 고려대는 민간인 이용익이 설립해 올해 121년의 전통이 우뚝하다. 고대가 차범근 축구 선수, 김연아 스케이팅 여왕을 배출했다.

연세대는 대학농구 화신 신동파를 비롯 서장훈 선수, 허정무 축구선수, 손연재 체조요정 선수, 근래 최민희 스케이팅 선수 등이 배출되어 있다. 한때는 연고전 경기 방송중계도 잘해 줬으나 지금은 그들만의 잔치로 비판도 없지않다. 그러나 사학의 쌍벽 연고대 체육 행사는 현재 21승 11무 20패로 고대가 한번 더 우승했다. 연고전․고연전의 체육경기로 88올림픽이나 세계축구 4강 신화처럼 대한체육계를 빛내고 대학 젊음의 꿈이 용솟음 치길 빈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