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해 해병대 신병훈련 받을 때 M1소총 교육 중사교관은 “총은 무리를 가하면 총알이 나가지 않는다”고 교육했다. 나는 우리 삶의 교훈으로 생각했다.
무리한 일은 망하지 성공이 없다. 1960년도 자유당 독재정권은 정부통령 선거에 무리수를 뒀다. 정부통령 후보 이승만 이기붕 당선을 시키기 위해 부정선거 거짓을 꾸민 것이다. 선거관리 책임자인 최인규 내무장관은 여당 투표지 40%를 투표함에 미리 넣어 두었다.
당시 야당 민주당 후보는 조병옥 장면이었다. 3대 정부통령 선거때 부통령 출마했던 이기붕은 낙선했다. 이번 4대 정부통령 선거에 또 장면 박사와 대결 되니 트라우마가 생겨 국회의장 이기붕은 이화여대 부총장 아내 박마리와 함께 최인규 장관에게 꼭 당선되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승만과 자유당에 충성하는 최인규는 3인조 5인조 9인조 여당표 감시원까지 투표장에 보내 공개투표 시키고 야당 참관인은 아예 내쫓았다. 미국 신병치료차 조병옥 야당 대통령 후보가 귀국전에 선거하기 위해 5월 발표했던 정부통령 선거를 3월 15일로 앞당겼다. ‘죽나사나 결판내자’ 선거구호 앞세운 조병옥 후보는 병원에서 2월 15일 선거 한 달 앞두고 사망했다.
3대 정부통령 선거 때는 해공 신익희가 선거유세차 타고가던 호남선 열차에서 급서하더니 이번 4대째도 유석 조병옥 대통령 후보가 선거전에 사망했다. 대통령은 4대에도 이미 이승만으로 모두 생각했다. 나이 80대로 이승만이 별세하면 바로 대통령직을 승계할 부통령 자리가 막중해 보였다. 두 번째 부통령에 도전하는 이기붕은 이강석 장남까지 이승만 양아들로 바쳤다.
이승만 다음의 막강한 권력자인 이기붕은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신의 부통령 당선이 절대적 소망이었다. 대구 2.28 시위 고교생을 비롯해 대전 부산 등의 고교생들이 학생들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시위가 거의 날마다 발생 중에 비극의 3.15 부정선거를 일으켰다. 선거 당일날 마산 중고생들이 “부정선거 다시하라” 외치며 시위했다. 학생들이 죽고 다쳤다. 일부는 구치소에 구금했다. “구속학생 석방하라” 날마다 시위했다. 경찰은 공산간첩 사주를 받은 학생시위로 순수학생들을 공산당 앞잡이로 몰아갔다. 그런 가운데 거짓은 오래 못간다고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군이 마산 앞바다 낚시군의 낚시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떠올랐다. 천인공노할 일로 온 국민이 분노했다.
이 비참한 살인기사가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학원 자유 짓밟지 말라” 외치며 고대생 3천 명이 태평로 국회의사당 앞까지 가서 “부정선거 다시 하라” 외쳤다. 학교로 되돌아가는 길에 종로 3가 4가길에서 정치깡패들의 무자비한 습격을 받았다. 학생들이 많이 다쳤다. 이기붕과 한고향인 이정재, 임화수와 유지광, 동대문 정치깡패들의 소행이었다.
이 고대생 정치깡패 피습사건도 국민의 분노를 크게 일으켰다. 이튿날 4월 19일 피의 화요일이 밝았다. 서울을 비롯 전국 백만학도가 “3.15 부정선거 다시 하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죽인 학생 살려내라” 성난 사자같이 성난 정의의 물결로 외치며 전국의 거리를 뛰었다. 점심도 굶은 채 신촌에서 중앙청앞까지 뛰었던 나도 총쏘는 자유당 사병경찰이 얄미웠다. 186명의 학생이 희생되었다. 학생의 피에 보답하자 외치는 258명의 교수 시위에 자극받은 12년간의 대통령 이승만이 하야했다. 백만학도의 민주주의 승리였다.
부정선거 원흉 이기붕 일가는 경무대 관저에서 집단 자살했다. 비극의 정치말로였다. 내무장관 최인규 정치깡패 이정재 임화수 경무대 경찰서장 곽영주 그리고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이 5명을 무능한 민주당 정권을 5.16 군사정변으로 무너뜨린 박정희 대통령이 처형했다. 자유민주주의 공로를 이룬 이승만의 말로가 쓸쓸했다.
우리 헌법전문에 빛나는 4.19정신 잘 받들어 민주대한 잘 지키자. 4.19 66주년을 맞으며 우리 186명 희생 영령에게 추모의 묵념을 드리자.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