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 (25)
오랜 종교전쟁 종식한 평화조약·감사 찬송
1517년 루터가 비텐베르크성 교회 문에 붙인 95개 조 반박문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은 가톨릭과 개신교 간 종교전쟁으로 번져 독일과 스위스,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전 유럽으로 백 년 넘게 이어졌다.
1555년 9월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갈등이 해결된 듯했지만, 루터파의 권리만 인정되었기에 칼뱅파는 불법 종교로서 남아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불이익과 핍박을 받았으며, “각 지역 주민의 신앙은 지역 영주의 신앙에 따른다”는 결정으로 개인은 군주 신앙을 따라야만 하는 불씨는 그대로 남았다.
스위스의 카펠 전쟁(1529, 1531),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1562-1598), 영국의 청교도 혁명(1642-1651), 네덜란드 독립 전쟁(1568-1648)과 독일에서 대규모 국제전쟁으로 번진 30년 전쟁(1618-1648)은 약 8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648년 신성 로마 제국의 쾰른 선제후국 베스트팔렌 지방의 오스나브뤼크와 뮌스터에서 체결된 평화조약인 베스트팔렌조약(Westfälischer Friede)이 있고서야 개신교 국가들이 드디어 로마 가톨릭교회 탄압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지긋지긋한 전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 찬송가 66장 ‘다 감사드리세’(‘Nun danket alle Gott’)는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을 기념하기 위해 독일 삭소니 선거후의 명으로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린카르트(Martin Rinkart, 1586-1649)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정치 군사적으로 피난처가 된 아일렌부르크에서 목회하며 전쟁 중에 인구 과밀, 역병, 기근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루터교 목사이다. 가장 심각했던 1637년 한 해엔 하루에 50건에 달하는 장례식을 집례했으며, 아내의 장례를 포함 4천 건 이상 장례식을 집례했다. 린카르트는 이런 전쟁 상황 속에서도 감사 찬송 시를 지었고, 이 찬송은 베스트팔렌조약 체결 당시 널리 애창되었다.
곡명 NUN DANKET는 크뤼거(Johann Crger, 1598-1662)가 작곡한 것으로, J.S.바흐의 종교개혁주일을 위한 칸타타 ‘주 하나님은 태양이시며, 방패이시라’(Gott der Herr ist Sonn und Schild, BWV. 79)와 멘델스존의 ‘찬양 송가’(Lobgesang, op.52, 1840) 등 많은 작품에 인용된다.
김명엽 장로
<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