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 후반, 여전히 쓰임받는 삶의 길에 서다”
은퇴 후에도 계속되는 소명, 멈추지 않는 발걸음
삶의 끝자락이 아닌 또 하나의 사명으로 시작

다행히 내 마음이 전달됐는지 사무실은 점점 활력을 찾으면서 적극적인 분위기로 변해갔다. 기사도 좋아졌고 편집 방향도 교계의 많은 분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광고도, 독자도 늘었다. 3년간 한국장로신문사 사장직을 감당하는 동안 한국기독실업인회(CMBC) 회장직도 동시에 맡아 무척 바쁘게 지냈지만, 그런 바쁜 일상 자체가 행복이었다.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나이 여든 중반이 넘어서 사업도 시무장로직도 은퇴한 노년 후반기인데도 내 스케줄은 늘 빡빡하다. 여전히 오라는 곳도 많고, 특강 초청도 많고, 틈틈이 글도 써야 하고 돈 쓸 곳도 많으니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 뜻대로 살기를 참 잘했다.”고 되뇌일 만큼, 축복 중의 축복이다.
올해는 여든 다섯의 나이에 새로 이사장직을 맡은 CTS 기독교방송 문화재단 일로, 그리고 장신대 ‘디지털 리터러시’ 프로젝트 등으로 젊은 사람들과 회의할 일이 많다. 이렇게 소통할 기회가 생겨서, 그리고 뭐라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서 기쁘다.
젊은 교수들, 전문인들과 만날 기회를 얻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대화 중에 내가 모르는 영어가 나올 때도 있다.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럼에도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고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상황이 즐겁다. 40여 년 사업하면서 전문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신상품을 개발하던 그때로 잠시 돌아가는 듯도 하다.
내 지식과 능력으로만 뭔가 하려고 한다면 젊은이들에게 ‘꼰대’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될까봐 제안받은 일을 고사한 적도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 쓰임받는 존재로서의 역할이 남아 있다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해내고 싶다.
다만, 십여 년 전부터는 가족과 보내는 시간에 더 많은 비중을 두려고 노력하고 있다. 젊어서는 사업하랴 교회 일하랴 밖으로만 돌아다녀도 아내가 나머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해주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아내에게도 내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각자의 역할만 잘 하면 되는 게 아니라 서로 도우면서 살아나가야 할 나이다. 그래서 되도록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
코로나 때문에 2020년 이후로는 다니지 못했지만, 그 전까지 몇 년 동안은 1년에 두 번씩 우리 내외와 이대식 장로 내외 총 4명이 함께 유럽 여러 나라를 운전하면서 여행하기도 했다. 대부분 사업하던 시절 출장을 다니며 숱하게 가봤던 나라들이지만, 차를 직접 운전하면서 여유롭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느낌은 사뭇 새로웠다. 애초부터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같이 떠난 여행이기도 했지만, 이 나이쯤 되니 다들 이심전심이라서 여행하는 동안 별로 말을 하지 않았어도 늘 다 같이 여유롭고 즐거웠다.
특히 2019년 6~7월, 40일간의 아이슬란드 일주가 기억에 남는다. 70~80대 나이의 네 사람이 떠난 여행이지만 요즘 청년들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한, 진정한 의미의 ‘자유여행’을 했다. 숙소도, 여행 루트도 미리 정하지 않았다. 그때그때 스마트폰으로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고, 마트에서 장을 봐서 요리를 해먹었다. 차를 렌트해서 직접 운전하며 다녔고 소통이 필요하면 스마트폰 번역기를 사용했다. 백야 현상으로 대낮같이 밝은 밤에 굳이 억지로 자려 하지 않고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봤다.
서부 피오르트의 끝자락 마을을 여행할 때 경사가 심하고 어두운 동굴 계단을 걸어가야 한 적이 있었다. 나도 무척 조심스러웠지만 행여 아내가 다칠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한 외국인 여성이 스마트폰 플래시 불빛을 아내의 발 앞에 계속 비춰주며 걷는 게 아닌가? 이렇게 예기치 못한 감동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자유여행의 묘미구나 싶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특히 직접 운전하면서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역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실감을 할 때가 많다. 나는 지금 나이에도 운전을 즐기는데, 이 자유로움을 놓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물론 젊은 시절에 비하면 몸이 노쇠했고 에너지도 덜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갑자기 닥친 불행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 몸으로 많은 일을 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뿐이다. 그렇게 살아온 데 대한 감사와, 언젠가 무거운 몸을 벗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소망이 있다면 아쉬울 것도 없고 슬플 것도 없다.
아들과 딸은 다 커서 성인이 됐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때가 있다. 그럴 때의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도 내게 아주 중요한 일이 됐다. 이메일이나 카톡이 올 때마다 답장도 꼬박꼬박 해주고, 행간에 어떤 고민이 있지는 않은지 알아볼 수 있는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 중이다.
대학생이 된 손자 손녀들에게 틈틈이 조금씩 용돈을 송금해 주기도 한다. 가장 효과적인 투자 방법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기억하고, 가족들에게 받은 따뜻한 사랑과 환대를 느끼면서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하는 투자다. 이런 일로 손자 손녀들과 소통한 일이 다시 아들 내외, 딸 내외와의 대화 소재가 된다. 노년에 이렇게 바빠서 행복하다.
그러는 중에도 내 이야기를 들어서 도움이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면 마다않고 가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청년들을 만날 때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그들 앞에 미지의 삶이 펼쳐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가슴 벅찬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요즘 청년들은 일견 풍요로운 삶을 사는 듯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불안으로 꽉 차 있다. 점점 다양해지고, 변화가 빨라지는 세상 속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진로를 찾으며 살아왔지만 좋은 직장도, 안정된 삶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답답하고 막막하다는 청년들이 많다. 거기다 대고 “너희 처지는 우리 때보다는 낫지 않느냐!”라고 하는 것은 공감대를 찾기는커녕 청년들을 반대편으로 밀어내는 일이다.
박래창 장로
<소망교회 원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