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관세협상

Google+ LinkedIn Katalk +

지금으로부터 142년 전, 1883년 11월 9일 윤치호의 일기에는 미국 공사가 조선에게 관세 협상에 대해 조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나는 영국 공사가 양면화(洋棉花)에 대해 추7·5(7.5%)로 하는 것을 허락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만약 과연 그렇다고 하면 실로 귀국을 위하여 경하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영국이 면직물에 낮은 관세를 허락한 걸 보고 놀라워하며, 조선이 그걸 받아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평가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 공사는 조선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술이나 담배처럼 수입량이 적은 물건에 높은 세금을 매겨봤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많이 들어오는 물건에 높은 관세를 매겨야 나라에 이익이 된다.” 

지금 들어도 현실적인 조언이다. 당시 조선은 외국과의 무역에서 힘이 약했고, 외교도 서툴렀다. 그래서 관세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야 나라 살림에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고, 기술력도 뛰어난데도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는 끌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미국은 한국 제품에 25%의 관세를 예고했고, 한국은 이를 15%로 낮추는 대신 3천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투자와 1천억 달러의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미국산 자동차와 농산물도 더 많이 사기로 했다. 사실상 미국이 원하는 대로 거의 다 들어준 셈이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같은 전략 산업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윤치호의 시대와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리는 경제 10대국, K팝 시대, 한류 열풍 등의 환상에 젖어 대한민국이 정말 강대국인 줄 착각하고 산다. 하지만 관세 협상 같은 문제 앞에서는 우리의 민낯을 솔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국제 사회에 의로운 정치는 없다. 누가 덜 악한가의 비교만 있을 뿐이다. 세상에 정의는 힘의 논리밖에 없다. 누가 더 힘이 센가에 따라 정의의 기준은 언제든지 바뀐다. 미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나라의 운명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기댈 수는 없다.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전략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지혜가 없다면, 아무리 경제가 커도 외교에서는 약자가 되고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윤치호의 시대처럼 외교는 여전히 힘의 게임이다. 그 게임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강자가 누군지 구별하고, 그 강자의 힘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