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톨스토이의 두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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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전래 민화(民話)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이다. 두 노인이 성도(聖都)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났다. 한 사람은 부자 농부 세베료프, 다른 한 사람은 별로 돈이 없는 보도르프라는 사람이었다. 세베료프는 고지식(Simple & Honest)한 농부로 술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욕을 한 적도 없다. 매사에 엄격하고 야무진 노인이었다.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었다. 마을의 반장을 두 번이나 지냈지만 일 원 한장 어김이 없었다. 친구 보도르프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노인으로 목수(木手)였다. 나이 먹어서는 목수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꿀벌을 치고 있었다. 마음씨 좋고 명랑하고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두 노인은 오래 전부터 성지 순례를 하기로 약속을 해 두고 있었다. 마침내 집안 걱정, 자식들 염려는 잠시 내려놓고 순례 길을 떠나기로 했다. 몇 주일째를 계속 걸었다. 보도르프는 잠시 쉬면서 물도 좀 마시고 싶었으나 세베료프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농가 앞에 이르렀을 때 목이 마른 보도르프는 잠시 들어가 물을 얻어 마시고 따라갈 터이니 먼저 가라고 이르고 그 집으로 들어 갔다. 그러나 그 집안에서는 온 식구들이 굶주린 끝에 유행병까지 얻어 사경(死境)을 헤매고 있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보도르프는 성지 순례를 단념하고 그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기로 했다. 한편 먼저 길을 떠난 세베료프는 친구가 뒤따라 오기를 기다렸으나 오지를 않자 나무 그늘에서 잠시 졸다가 깨었다. 졸고 있는 사이에 보도르프가 혹시 앞에 가지 않았을까 싶어 발길을 더욱 재촉했다. 

성지를 향해 걸으면서도 그의 머릿속은 집안 일로 가득 차 있었다. 자기가 없는 사이에 가축 일, 농사 일은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행여나 허리에 차고 있는 자기 지갑을 도둑맞지는 않을까 주위 사람들을 경계했다. 

보도르프는 그 집 식구들이 병고(病苦)에서 일어난 후 먹고 지낼 식량과 땔감을 마련해 놓고 집으로 돌아왔다. 혼자서 집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가족들에게 변명했다. “나는 주님의 인도하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도중에 돈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그 농가에서 일어났던 일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전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집안 일을 보살폈다. 

한편 예루살렘에 도착한 세베료프는 순례자들로 혼잡한 성당으로 들어가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성화(聖火)가 타고 있는 제단 맨 앞에 자기 친구 보도르프의 뒷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뒷모습 둘레에는 둥근 원광(圓光)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아니, 저 친구가 언제 왔지?” 하고 친구 쪽으로 가려는데 친구의 모습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성소에서 이같은 일이 세 번이나 있게 되었다. 순례에서 돌아온 세베료프는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몸만 갔다 왔구나. 이 세상에서는 죽는 날까지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과 선행을 힘써 살아야 한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다.” 

근래에 우리들의 인성이 얼마나 거칠어지고 있는가. 내 마음에 안들면, 내가 기분이 나쁘면 절제를 하지 못하고 분노를 표출한다. 사회는 비정(非情)한 경쟁과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의 교육은 사람을 만들어주지 않는다.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준비에만 집중한다.

 교회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자(使命者)라기보다 그냥 단순한 직업인으로 느껴질 때가 많이 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비난, 비판의 대상이 되어 간다. 세상의 본이 되어주는데 실패했다. 도덕적으로도 세상보다 더 나을 게 없어 보인다. 성령이 교회를 주장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돈이 교회를 주장한다. 목사님은 교인들의 본이 되어 주지 못한다. 

“심령에 은혜의 왕국이 세워지면 마음에는 빛이 있고 정서에는 질서가 있고 의지에는 유연성이 있고 양심에는 민감함이 있다.”(토마스 왓슨(T Watson,1620~1688. 청교도 지도자)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장로문인협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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